난 이 정도밖에 안돼?… 주께서 약속하시면 불가능은 없다

입력 2020-08-07 17:03
미국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목회자와 당회원들이 지난해 1월 교회에서 열린 ‘신년 특별 무릎기도회’ 때 다음세대를 위해 안수기도하고 있다.

헬라어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두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입니다. 크로노스는 초침 소리처럼 지나가는 시간, 즉 낮이 지나면 밤이 오고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는 시간입니다. 누구나 크로노스의 지배를 받으며 결국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합니다.

카이로스는 직선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절대적 의미의 시간 혹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느끼는 감격스러운 시간입니다. 역사의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가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구속의 목적을 향해 흘러갑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를 경험하지 못한 채 땅 위의 시간인 크로노스의 흐름에 사로잡혀 절망합니다. 10년이 흘렀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은 없었습니다. 결국, 아브람은 하갈을 취해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100살이 돼 크로노스의 시간으로는 불가능한 때에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우리가 정한 시간의 범위에 맞아야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상의 시간이 아니라 당신이 계획하신 완벽한 시간으로 움직이십니다.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

적진을 뚫고 롯을 구출해 낸 아브람의 용맹에 대한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15장은 하나님이 아브람의 두려움을 위로하시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아마도 아브람은 적들이 다시 동맹군을 이끌고 쳐들어오면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을 근본적으로 두렵게 만든 것은 자식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지 않고 나이는 들어가는 현실을 보면서, 그는 절망과 두려움에 빠집니다.

당시에는 자식이 없으면 사람을 택하여 재산을 상속하고 아들의 의무를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충실한 종 엘리에셀이 자신의 상속자가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은 하나님의 때가 아닌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아브람의 몸에서 날 아들이 있을 것이며 그가 아브람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실물 교육을 하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차선은 최선의 적이 될 수 있다

아브람의 나이는 85세가 됐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마침내 사래는 아브람에게 대안을 제시합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사래의 제안에 대한 아브람의 반응은 너무나 단순합니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지금까지 보여 줬던 믿음의 조상다운 모습은 한순간에 사라집니다. 아들을 주시겠다는 반복적인 약속을 순식간에 무시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아브람의 행동은 자연스러워 보이고 가능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씀대로’가 아니라 ‘생각대로’의 선택이었습니다. 아브람은 차선을 택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고 기다렸다면 그것이 최선이지만, 아브람은 납득될 만한 차선을 택했습니다.

‘차선은 최선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람이 선택해야 할 길은 명확했습니다. 현실의 상황과 인간의 지혜가 지시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키는 길이었습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신 하나님

드디어 아브람이 99살이 됐습니다.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희미해지고 13살인 이스마엘과 더불어 노년을 보내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이라는 표현이 구약성경에서 처음으로 나타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떤 불가능한 약속도 지키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 증표로 그의 이름을 바꾸고 위대한 약속을 선포하십니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창 17:5~8)

아브람을 마침내 아브라함으로 바꾸시고 새로운 역사를 이뤄가시는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를 동일하게 훈련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택함받은 사람들이 아브람의 인생에서 벗어나 아브라함의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누구나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생각 속에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나의 한계를 딛고 일어나 하나님이 만드실 아브라함의 모습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겸손함은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영적인 눈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시면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친히 이뤄가십니다. 우리의 재능의 한계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달려가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류응렬 미국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