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 자연재해 문제조차 협력 못할 이유 있나

입력 2020-08-06 04:03
북한이 최근 수 차례 임진강 수계 황강댐 물을 무단 방류한 정황이 포착됐다. 연일 중부지방에 퍼붓고 있는 집중호우에 대비하기 위한 저수량 조절 차원으로 보인다. 기록적인 폭우로 북한이 입은 피해도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홍수 예방 차원에서 댐 수량을 조절하는 건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나 무단 방류는 남북 합의 위반이다.

임진강 북측 군사분계선 기준 54㎞에 위치한 황강댐은 최대 저수량 3억5000만t의 발전용 댐이다. 이 댐에서 물을 방류하면 임진강 수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우리 측에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이 2009년 9월 황강댐 물을 예고 없이 방류해 경기도 연천에서 야영하던 6명이 사망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2009년 10월 임진강 수해방지 관련 남북 실무회담에서 황강댐 물 방류 시 북이 우리 측에 사전 통보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이듬해 7월 북이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통해 통보한 전례가 있다.

정부는 합의를 위반한 북한 당국에 엄중히 경고해야 한다.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면 2009년의 합의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기초 협력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기대한다”는 정부의 대응은 너무 미온적이다. 북을 대화의 장으로 유도하기 위한 유화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처럼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관한 문제는 단호해야 한다.

북이 변해야 한다. 자연재해는 비정치적, 비군사적 사안이다. 이런 사안마저 합의를 위반하면 북을 신뢰하기가 더 어렵다. 북이 바라는 게 대결이 아니라면 끊은 남북 간 채널을 즉각 복구하는 등의 전향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자연재해 분야에서 정보 공유가 이뤄지고 협력의 토대가 마련되면 코로나19 등으로 협력의 범위를 점차 넓혀나갈 수 있다.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인도적 분야에서까지 남북이 협력 못할 이유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