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외롭게 자란 나는 결혼하면 절대 부모님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다 대학 때 만난 남편과 결혼하고 행복을 꿈꾸었지만 결혼생활은 내 생각과 너무나 달랐다. 한계에 이른 나는 위자료고 뭐고 다 필요 없다며 결국 이혼했다. 막상 이혼하니 살길이 막막해 닥치는 대로 투 잡, 쓰리 잡을 뛰다가 요가 강사 자격증을 취득해 강사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손가락이 뻣뻣해지며 움직이기 힘들었다.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난생 처음 들어보는 자가 면역질환의 일종인 류머티즘 진단을 받았다. 평생 약을 먹으며 관절을 사용하지 말라니 기가 막혔다. 요가 강사를 그만둘 수 없어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관리했지만 팔을 들 수도, 발도 제대로 디딜 수도 없을 정도로 병은 점점 악화됐다.
중학교 때부터 교회에 다녔고 어른이 돼서는 새벽예배, 여전도회, 성가대, 주일학교, 각종 봉사 등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말도 안 되는 병에 걸리니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고쳐주실 것이라는 마음에 매일 새벽마다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염려와 고통은 점점 커졌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한 가닥 희망으로 서울의 큰 병원을 찾아갔다. 그러나 치료는 불가능하고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최종 진단에 마음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때 20년 전 같이 교회에 다녔던 친구 생각이 문득 났다. 20년 만에 첫 통화를 하고 다음날 친구와 함께 춘천 한마음교회에 갔다. 처음 간 교회는 찬양과 기도가 너무 뜨거웠고 생각지도 않았던 20년 전에 친했던 동생도 만났다. “언니,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가 있어! 언니도 하나님을 믿고 기쁘게 살았으면 좋겠어.” 하는 동생은 과거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그러다 겨울 수련회 때 동생은 뜬금없이 “언니, 하나님이 살아계신 걸 어떻게 믿을 수 있어?”라고 물었고 나는 “살아계시겠지. 살아계시지 않을까?”고 얼버무렸다.
동생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가 바로 부활이라고 했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알겠는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말씀을 찾아가며 확신 있게 선포하실 때 구약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예수님이 진짜 하나님 아들임이 선명히 비춰졌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에 기록된 실제 사건이었다. 성령께서 내 눈을 열어주시니 복음은 너무나 쉽고 간단했다. 그런 사랑도 잊고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며 내 마음대로 살았던 마귀 같이 악한 죄인인 것을 알게 되자 나는 곧바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했다. 그리고 창세기 말씀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나는 더 이상 질병이나 환경을 불평하거나 원망할 존재가 아니라는 기쁨에 건강, 물질, 자식 등 모든 무거운 짐을 주님 앞에 다 내려놓았다.
그 후 나는 어르신들에게 건강 체조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함께 체조하며 소망 없이 사는 어르신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성령께서 역사해 꼭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갈 수 있게 도와 달라고 기도하며 계속 복음을 전했다. 환경과 질병으로 세상 염려 다 끌어안고 소망 없이 살던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과 동행하며 날마다 주님의 사랑 속에 주님이 인도하시는 사명의 길을 오늘도 걸어간다.
김형자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