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미술] 쇠락한 ‘70년대 타워팰리스’… 그 밑 개천엔 예술이 흐른다

입력 2020-08-08 04:03 수정 2020-08-08 04:03
서울 서대문구 유진상가아파트는 1970년에 군사용 방어목적으로 하천 위에 지은 주상복합아파트다. 90년대 중반엔 아파트 위로 내부순환로가 지나가는 바람에 B동 아파트 상부 2개 층이 싹둑 잘리는 기구한 운명이 됐다. 그런 유진상가 하부를 흐르는 홍제천 구간이 예술 공간으로 변신해 지난 7월부터 공공미술 전시 ‘홍제유연’이 열리고 있다. 최현규 기자

서울 서대문구 지하철 3호선 홍제역 사거리에는 개천 위에 세워진 희한한 아파트가 있다. ‘1970년대의 타워팰리스’로 비유되는 유진상가아파트다. 시간이 흐르며 퇴락해 구청장 선거가 있을 때마다 ‘유진상가아파트 철거’가 매번 후보 공약으로 나올 정도로 흉물 처지가 됐다. 도심 생태가 화두로 떠오르며 홍제천도 정비돼 산책로가 조성됐지만, 유진상가 아래를 흐르는 250m 구간만은 진입이 막혔다. 단절됐던 그 하부 구간은 지난해 3월 개통됐고, 50년 만에 뻥 뚫린 그 지하의 하천 공간을 무대 삼아 지금 공공미술 전시 ‘홍제유연(弘濟流緣)’이 열리고 있다.

중정을 사이에 두고 외관에서 대조를 보이는 A동과 B동. 최현규 기자

생태하천 너머 페인트칠 너덜 ‘유진맨숀A’

지난 7월 비 갠 여름 오후, 홍제유연 전시를 보러 갔다. 잘 다듬은 돌로 징검다리를 놓은 개천에는 다리 긴 새들이 날아와 목을 축이며 달력 같은 그림을 연출했다. 어두컴컴한 지하 공간에는 그 어둠을 이용한 빛 예술이 발길을 재촉했다. 건물을 받치는 100여 개 기둥 사이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설치미술, 조명예술, 미디어아트, 사운드아트 등 8개의 작품이 설치돼 환상적인 분위기의 예술 공간으로 변신했다. 서울시가 매년 산하 구청의 공모를 받아 실시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서울은미술관’의 하나다.

교각을 기둥 삼아 LED 라이트 바가 무한대로 뻗어가는 듯하고, 교각에 매달린 한자어 ‘音(음)’과 ‘明(명)’은 인공과 자연을 상징하며 달처럼 물에 비치고, 가야금 퍼포먼스가 벌어지고 ….

뮌, 염상훈, 윤형민, 진기종, 홍초선, 팀코워크 등 미술 판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이 참여했다. 화제성이 다분해 빛이 흐르는 예술길을 표방한 이곳은 셀카 명소로 뜰 게 분명해 보였다. 냄새, 시궁창 냄새는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50년간 막혔던 세월을 고자질이라도 하고 싶다는 듯 말이다. 하지만 사진에선 냄새가 티 날 일도 없다.

“부잣집 옆에 있으면 떡고물이라도 떨어져야 하는 게지!”

이 아파트 입주 초창기부터 살았다는 팔순 넘은 할머니 A씨는 그런 소식에도 시큰둥했다. 눙치듯 하는 말에는 뼈가 있었다. 문득 유진상가아파트의 흉한 ‘뒤통수’가 떠올랐다. 새로 단장하고 예술로 옷을 입힌 홍제천 하부공간에서 올려다본 유진상가아파트의 외관은 남루했다. 유행이 한참 지난 미색 페인트칠은 벗겨지고 때까지 묻은 외벽에 검은 고딕체로 쓴 ‘유진맨숀 A’. ‘맨션’이 아닌 ‘맨숀’이었다. 지금은 쓰지 않는 표기법에서 박정희 시대의 유물 같은 아파트에 살아가는 주민들의 심정이 와락 전해졌다.

홍제천의 홍제유연 전시장 들머리에서 바라본 유진상가. 최현규 기자

바닥엔 하천, 지붕엔 고가도로

강승현의 석사학위 논문 ‘1960∼70년대 서울 상가아파트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저층부의 상가 부분과 상층부의 주거 부분으로 구성된 상가아파트는 60년대 말∼70년대 초 한국에서 반짝 유행했던 주거 양식이다. 70년대 강남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최초로 등장한 복합집합주택이다. 주로 간선도로변, 교차로 등에 위치해 도시미관을 개선하는 ‘전시 효과’를 담당했다. 세운상가, 낙원상가, 유진상가, 원일아파트, 남아현아파트, 영진상가아파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유진상가는 개천을 복개한 시유지에 폭 50m, 길이 200m로 지어졌다. 개천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게 상식으론 이해가 안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던 1960∼70년대 박정희 시대에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비상식은 북한의 침략 시 방어기지로 건설된 유진상가의 탄생사를 보면 수긍이 간다. 68년은 간첩 김신조 침투 사건과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잇따르며 안보가 이슈로 떠올랐던 해였다. 그해 1월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시도는 자하문 초소 인근에서 접전이 벌어지며 미수로 끝났지만, 청와대 안전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안보 불안에 응답하듯 나온 것이 유진상가였다. 박정희 시대의 건축가 김수근이 세운상가를 세운 지 1년 뒤인 1970년 들어섰다. 당시 관급 공사를 많이 수주하던 신성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유진상가가 들어선 곳은 북한군이 구파발을 뚫고 남하할 경우 이를 최후에 저지해야 하는 수도권 방어선에 속한 곳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군사시설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1층 가로변에 세워진 거대한 기둥(필로티)이 그런 예이다. 유사시 아군 탱크 진지로 쓰일 수 있게끔 기둥 간격이 아주 넓다.

“유사시엔 건물도 폭파해 방어벽으로 써서 대남 침입을 저지할 수 있고요. 초창기엔 아파트 꼭대기 층에 대공포도 있었다고 합디다.”

입주한 지 30년 됐다는 최언열(62)씨는 “제가 사는 집엔 전에 ‘쓰리스타(중장)’가 살았다”고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강남 개발 이전까지 유진상가는 초호화 아파트였다. 한국에서 넓고 큰 아파트를 뜻하는 영어 단어였던 ‘맨숀’이 붙은 것도 그런 이유다. 서울에 아파트도 구경하기 힘든 시절, 이곳은 실평수 109∼221㎡(옛 33∼67평)의 중대형으로 구성된 주상복합아파트였다. 2000년대 가장 아파트 가격이 비쌌던 주상복합 타워팰리스에 비유된다. 고 김영관 주 월남대사, 가수 김세레나, 배우 윤정희 등 군 장성과 중앙정보부 사람들, 청와대 직원, 연예인 등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살았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꿈의 아파트’였어요. 세운상가, 낙원상가, 유진상가 등 70년대 빅3 중 여기가 규모가 제일 컸어요. 1층 상가의 수입품 코너는 정말 최고급이었지요. 남대문 수입상가는 저리 가라고 할 정도였어요. 거기는 보따리 장사, 여기는 정식 수입코너라고나 할까.” (주민 황차랑씨·77)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며 강북의 초호화 아파트도 쇠락의 수순에 들어갔다. 모진 운명은 한 번 더 찾아왔다. 유진상가는 총 5층으로 1층이 상가, 나머지 4개 층이 아파트로 돼 있다. 아파트는 A동과 B동이 중정(중앙정원)을 사이에 두고 ‘11’자형으로 쌍둥이처럼 마주 보고 있다. 92년 내부순환로 공사가 시작되며 B동 아파트를 관통하게끔 설계된 것이다. 머리 위로 고가도로가 지나가는 형국. B동 주민들이 이주 보상을 요구했고 결국 보상이 완료되며 97년 B동 아파트 위 2개 층이 철거됐다. 주거용 아파트는 A동 91세대만 남았다. B동은 서울시 소유로 넘어간 뒤 리모델링을 거쳐 창업보육센터, 50플러스센터, 취업지원센터, 혁신교육센터 등이 입주해 공공건물 기능을 하고 있다.

LED를 이용한 팀코워크의 조명 예술 작품 ‘온기’. 서울시 제공

예술은 상대적 박탈감까지 위로해줄까?

1층 상가에서 2층의 거주공간으로 올라가면 중정이라는 의외의 공간을 발견하곤 놀라게 된다. A동과 B동 사이 중정은 흥미롭다. 길이 160m에 폭도 16m나 되니 제법 넓다. B동에 중장년층의 인생 2막을 지원하는 ‘50플러스센터’가 2018년 봄 입주한 이후 공터처럼 황량했던 곳이 ‘녹색 정원’으로 변신했다. 센터는 비록 화분이지만 주민과 함께 상추, 토마토, 수국, 장미 등 꽃과 채소를 가꾸고 조립식 그늘막을 설치해 멋진 휴게 공간을 조성했다.

하지만 중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본 A동과 B동의 극명한 외관 차이는 어쩌지 못했다. B동은 새로 페인트하고 내부도 깔끔하게 고쳤지만 A동의 외벽은 칠이 벗겨져 너덜거리기까지 했다. 거침없는 그 할머니가 다시 말했다. “바로 앞에는 번듯하게 고쳐놓고 우리 건 형무소 같잖아.”

A동도 48층 아파트로 재탄생하는 꿈에 부푼 적이 있었다. 유진상가와 인근 인왕시장, 원일아파트가 함께 묶여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됐지만, 이해관계가 엇갈려 무산됐다. 그 사이 1층 상가는 대기업인 롯데슈퍼가 주인이 돼 간판이 깔끔하게 정비됐다. 대자본이 인수한 1층의 상가, 시의 세금이 들어간 B동은 세월의 남루를 벗어던졌지만, A동 아파트만 해진 옷 그대로였다.

“칠도 새로 하고, 엘리베이터도 생기고…. 그럼 여기만큼 좋은 데가 없지요. 시장 옆에 있지, 병원 가깝지, 교통 편리하지.”

최씨의 바람은 소박했다. 70년대 한국의 도시화 과정을 보존하고, 분단국가의 상흔을 간직한 역사적인 장소에서 펼쳐지는 홍제유연 전시를 보면서 한쪽 가슴이 뻐근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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