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잦은 특고 종사자·자영업자, 보험료 부담… 고용보험 ‘뜨거운 감자’

입력 2020-08-08 04:06

지난 5월 1일 노동절에 청와대가 “전 국민 건강보험처럼 전 국민 고용보험을 갖추는 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과제”라고 밝힌 지 100일이 됐다. 그러나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이를 크게 환영하는 쪽이 있는 반면 일부에선 탐탁지 않게 여긴다.

고용부 관계자는 7일 “고용보험법 개정안 관련 의견서 약 100건 중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에 찬성하는 의견과 반대하는 의견이 공존하지만, 아무래도 부담을 갖는 비중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특수고용직(특고) 종사자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 입법예고 기간은 지난달 28일 끝났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핵심 국정과제로 부상했다. 또 ‘한국판 뉴딜’ 이행 계획에 담기면서 추진 동력을 얻었다. 정부는 2025년까지 전 국민 고용보험을 전면 도입키로 했으며, 예술인에 이어 특고 종사자와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당연(의무)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하반기 중 고용보험법을 개정해 내년부터 2022년까지 차례로 특고의 고용보험을 늘릴 계획이다.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14개 직종이 우선 대상이다. 1년 이상 보험료를 내는 조건으로 직장을 잃었을 때 기존 월급의 60% 정도를 최대 9개월간 보장한다. 개정안에는 소득 감소로 이직한 경우에도 실업급여를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연말까지 로드맵을 마련해 계획을 보다 구체화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노동자 사각지대 해소’와 ‘고용 축소 우려’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1995년 국내에 도입된 고용보험은 원래 ‘근로자보험’으로 설계됐다. 특정 회사에 다니는 근로자를 위한 안전장치다. 그러나 노동 환경이 급변하면서 특고 종사자가 크게 늘었고, 사용자에게 노무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사회적 보호 필요성이 대두됐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에 대한 요구가 빗발쳤고, 이는 정부가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을 본격 추진하게 된 배경이 됐다.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보험 통계 현황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실업급여로 5조7151억원이 쓰였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월 실업급여 지급액이 1조원을 넘기는 건 이제 예삿일이 됐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일자리를 잃었다 해도 고용보험에 가입한 노동자들은 일정 기간은 정부가 주는 보험금으로 생계를 지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던 특고 종사자와 자영업자는 고용시장 위기에 그대로 노출됐다.

고용보험 가입자 현황은 사회안전망 부재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지난 5월 기준으로 국내 전체 취업자는 2693만명인데 고용보험 가입률은 51.3%에 불과하다. 1300여만명의 특고 종사자와 자영엽자는 당장 일자리를 잃어도 국가로부터 보호받기 어렵다는 의미다. 선진국에 비해 보호체계가 미흡한 점도 분명하다. 영국의 경우 자영업자에 대한 일반적인 실업급여를 지급하지는 않지만 자영업자가 폐업하는 경우 자산 조사를 거쳐 생활비 일부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메운다는 정책 목표에도 불구하고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등 일부 특고 종사자들은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을 반대한다.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데 매달 고정으로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특정 회사에 종속된 근로자보다 이직이 잦기 때문에 고용보험이 불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경영계도 불만이다. 사용자가 230만명에 달하는 특고 종사자 보험료까지 분담하면 인건비 지출 규모가 커질 것이고, 결국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과잉보호 제도’라는 비판을 피하려면 선택 가입으로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실업급여 재정에 대한 볼멘소리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보험료율을 1.3%에서 1.6%로 인상했다. 월 200만원을 버는 노동자는 보험료 3만2000원을 사업주와 절반씩 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월 실업급여 지급액이 1조원을 돌파하면서 고용보험기금 재정 상황이 더욱 악화할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바닥난 재정을 메우기 위해서는 추가로 보험료 인상을 추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고용보험기금 적자는 2조2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당연 적용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영업자는 폐업 후 구직 활동을 확인하는 절차의 기준이 모호하고, 보험료 징수를 위한 소득 수준 파악이 부정확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반복적인 위장 폐업으로 보험료를 수급하는 문제, 보험료 분담 문제 등 과제가 쌓여 있지만 뾰족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실제 2012년부터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임의 가입 길이 열렸지만 지난해 말 기준 가입자는 1%에도 못 미친다.

고용부 관계자는 “고용보험 임의 가입 대상에서 당연 적용 대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자영업자의 보험료 부담 방식은 기존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영업자의 보험료 지불 방식이 현행 100% 자부담에서 일부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민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 국민 고용보험으로 가는 방향성은 부정할 수 없지만 국민연금처럼 저항과 시행착오는 불가피할 것”이라며 “제도가 안착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간 갈등이 너무 크고 시간이 지체되면 정책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플랫폼 노동, 인공지능 노동 등 노동의 형태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제도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