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서 ‘손 찬가’ 울려 퍼졌으면…”

입력 2020-08-05 04:02
택시기사 김창남씨가 지난달 28일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한 뒤 택시 안에서 손흥민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 유니폼을 입고 기타를 든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손흥민 응원곡 ‘Fighting Son’을 작사·작곡해 발매했다. 윤성호 기자

“Hey hey, Fighting Son, Bring us victory~.”

택시기사 김창남(68)씨는 지난해 12월 축구 스타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의 응원가 ‘Fighting Son’을 발표했다. ‘재규어처럼 빠른 널 누구도 막지 못하지’ 같은 강렬한 가사엔 컨트리뮤직 스타일의 정겨운 멜로디가 입혀져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 주황색 법인택시를 끌고 나타난 김씨는 이 곡의 작곡 계기로 2019-2020 시즌 번리전에서 선보인 손흥민의 ‘70m 드리블 골’을 떠올렸다. “정말 대단한 골이었지. 수도 없이 골 장면을 돌려봤어.”

사진=AP뉴시스

골이 터진 순간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엔 공식 응원가인 ‘Nice one Sonny’가 울려 퍼졌다. 단조로운 가사가 반복되는 이 곡은 사실 구호에 가까웠고, 김씨는 응원가다운 응원가를 만들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공식 응원가는 3~40년 전의 한 선수 응원가를 이름만 바꾼 거더라고. 한국인이 영어 응원가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지.” 김씨는 그렇게 ‘Fighting Son’과 손흥민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담은 후속곡 ‘Just a playing ball boy’를 연이어 발매했다.

학생 시절이던 1968년 기타에 입문한 그는 머지 않아 서울 불광동의 ‘기타 잘 치는 고등학생’으로 소문났다. 가수 서수남은 그를 미8군 기획사에 소개했고, 그는 ‘김치 카우보이즈’란 밴드 소속으로 전국 미군부대를 유랑하는 가수가 됐다. 하지만 생계에 대한 걱정으로 ‘싱어송라이터’ 꿈을 접고 시작한 사업에서 그는 빚만 떠안게 됐다. 결국 2003년엔 경북 구미의 대형 식당에서 주방장 보조로까지 일하게 됐다. 그런 그에게 위로가 된 건 매주 새벽 브라운관을 통해 비춰지던 박지성의 활약이었다. 김씨는 “홀대받던 박지성이 영국에서 환호 받는 모습을 보면서 힘을 냈다”고 했다.

2008년 택시기사가 된 김씨는 매일 새벽부터 일한 덕에 5년 만에 남은 빚을 모두 청산했다. 아들을 결혼시키고 딸을 대학에 보낸 그에게 찾아온 건 외로움과 무료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 방송에서 틀어준 브람스의 3번 교향곡이 김씨의 귓가를 때렸다. “브람스가 이 곡을 완성하는 데 6년 걸렸다”는 진행자의 설명이 그의 마음을 뜨겁게 만든 것. “젊을 때 쉽게 작곡을 포기한 게 맘에 걸렸어요. 30년 만에 다시 기타를 잡게 됐지.”

2017년부터 김씨는 아예 반주, 노래, 코러스까지 모두 하기로 마음먹었다. 음반유통업에 종사하던 한 택시 손님이 “디지털 싱글은 쉽게 발매할 수 있다”고 조언한 것. 김씨는 매일 새벽 1시에 일어나 작곡·작사를 한 뒤 새벽 6시부터 12시간 동안 운전을 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같은 해 9월 첫 디지털 싱글 ‘Lazofe, dear my friend’를 발매한 이후 2년여 동안 총 8곡을 발표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택시 일은 가수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 김씨는 대화를 나눈 손님들의 사연을 작사에 반영했고, 손님들이 김씨의 열렬한 팬이 되기도 했다. 유명 사진작가 성남훈씨는 앨범 자켓에 쓸 풍경사진을 제공해줬다. 김씨가 다니는 개척교회의 목사는 김씨의 노래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줬다. 김씨가 곡을 올리는 유튜브 채널은 아직 구독자가 35명에 불과하지만, 음악 스트리밍 앱 멜론에선 조금씩 반응이 생기고 있다. 지난 1월 멜론에 등록된 ‘Fighting Son’은 1~3월 총 1423회 다운로드 됐고, ‘Just a playing ball boy’도 2월부터 두 달 간 947회 다운로드 됐을 정도다.

박지성에 이어 손흥민의 활약을 보며 힘을 얻는다는 김씨의 꿈은 ‘Fighting Son’이 EPL에 진출해 영국 현지에 울려 퍼지는 것. 이를 위해 김씨는 손흥민을 다룬 두 곡을 모두 영어로 작사했고, 자신의 활동명도 ‘CN KIM’으로 삼았다. “영국 사람들이 ‘Fighting Son’을 부르는 걸 매일 상상해. 장기적으로는 꼭 명곡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뒤늦은 나이에도 도전할 수 있단 메시지를 주고 싶어.”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