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덫, 고민 말고 찾아오세요”

입력 2020-08-05 04:01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장 겸 신용회복위원장이 4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금리 대출로 고통받는 채무자들을 향해 “창피하게 생각하지 말고, 상담을 받아 보라”고 말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병에 걸리면 의사와 상담을 해야죠. 끙끙 앓고 있으면 낫습니까? 창피하다 말고 저희한테 오세요.”

‘252만명’과 ‘51조원’. 연 19% 넘는 고금리 대출에 시달리는 사람의 수와 대출 총액이다. 4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만난 이계문(60) 서민금융진흥원장 겸 신용회복위원장은 “일단 찾아오시면 어떤 방법으로든 해법을 찾아드리겠다”고 단언했다. 생각보다 ‘몰라서’ 고금리를 내고, 빚 독촉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멀쩡히 길 걷다가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있죠. 열심히 살다가 빚으로 어려워진 분들 재기시켜드리는 게 저희 일입니다.”

오는 10월 취임 2주년을 앞둔 이 원장은 스스로를 “직접 다 해보는 스타일”이라고 표현한다. “네이버에 ‘즉시 대출’ 광고가 보여서 전화를 해 봤어요. 연 이자 24%를 부르더라고요. 우리 ‘햇살론17’ 쓰면 최저 신용자도 연 17.9%로 빌릴 수 있는데 말이죠.” 그가 취임식도 생략한 채 서울 관악구 상담센터를 찾은 건 ‘행동파’ 성향을 오롯이 드러낸 일화로 꼽힌다. 그렇게 전국 33개 상담센터에서 64명을 직접 만났다. “2400만원을 못 갚아서 17년 동안 빚 독촉에 시달린 중년 남성에게 매달 4만3000원씩 8년간 갚도록 조정해 드렸더니 눈물을 펑펑 쏟으시더군요.”

서민금융의 딜레마는 늘 부족한 재원과 일손이다. 그가 생각한 해법은 단순했다. “상담은 사람이 하되 ‘손 안 타도’ 될 일은 디지털로 하는 겁니다.” 불필요한 서식을 없애고 반복 업무는 자동화했다. 대신 고령층을 위해 콜센터 ARS 상담은 모두 ‘직접 통화’로 전환했다. 내부에선 “10년 할 일을 1년 만에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성과는 달콤했다. 연 20% 고금리를 11% 수준으로 낮춰주는 ‘맞춤대출’ 이용자는 최근 1년6개월간 3만3000명에서 11만3000명으로 3.4배 뛰었다. 디지털 전환 덕분에 코로나19 사태에도 총 상담 수요의 88%(6만9000명)가 기다림 없이 상담을 받았다.

채무자를 돕는 것과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사이의 균형점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이 원장은 “신용회복위원회의 평균 채무 탕감액이 3000만원, 서민금융진흥원 대출은 1000만원 수준”이라며 “부실 대기업에는 수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는데, 과연 무엇이 모럴 해저드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지난해 생활고로 숨진 ‘성북구 네 모녀’ 분들이 만약 저희를 찾아오셨다면 어떻게든 길을 찾아드렸을 겁니다.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자신의 권리입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