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에 걸리면 의사와 상담을 해야죠. 끙끙 앓고 있으면 낫습니까? 창피하다 말고 저희한테 오세요.”
‘252만명’과 ‘51조원’. 연 19% 넘는 고금리 대출에 시달리는 사람의 수와 대출 총액이다. 4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만난 이계문(60) 서민금융진흥원장 겸 신용회복위원장은 “일단 찾아오시면 어떤 방법으로든 해법을 찾아드리겠다”고 단언했다. 생각보다 ‘몰라서’ 고금리를 내고, 빚 독촉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멀쩡히 길 걷다가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있죠. 열심히 살다가 빚으로 어려워진 분들 재기시켜드리는 게 저희 일입니다.”
오는 10월 취임 2주년을 앞둔 이 원장은 스스로를 “직접 다 해보는 스타일”이라고 표현한다. “네이버에 ‘즉시 대출’ 광고가 보여서 전화를 해 봤어요. 연 이자 24%를 부르더라고요. 우리 ‘햇살론17’ 쓰면 최저 신용자도 연 17.9%로 빌릴 수 있는데 말이죠.” 그가 취임식도 생략한 채 서울 관악구 상담센터를 찾은 건 ‘행동파’ 성향을 오롯이 드러낸 일화로 꼽힌다. 그렇게 전국 33개 상담센터에서 64명을 직접 만났다. “2400만원을 못 갚아서 17년 동안 빚 독촉에 시달린 중년 남성에게 매달 4만3000원씩 8년간 갚도록 조정해 드렸더니 눈물을 펑펑 쏟으시더군요.”
서민금융의 딜레마는 늘 부족한 재원과 일손이다. 그가 생각한 해법은 단순했다. “상담은 사람이 하되 ‘손 안 타도’ 될 일은 디지털로 하는 겁니다.” 불필요한 서식을 없애고 반복 업무는 자동화했다. 대신 고령층을 위해 콜센터 ARS 상담은 모두 ‘직접 통화’로 전환했다. 내부에선 “10년 할 일을 1년 만에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성과는 달콤했다. 연 20% 고금리를 11% 수준으로 낮춰주는 ‘맞춤대출’ 이용자는 최근 1년6개월간 3만3000명에서 11만3000명으로 3.4배 뛰었다. 디지털 전환 덕분에 코로나19 사태에도 총 상담 수요의 88%(6만9000명)가 기다림 없이 상담을 받았다.
채무자를 돕는 것과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사이의 균형점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이 원장은 “신용회복위원회의 평균 채무 탕감액이 3000만원, 서민금융진흥원 대출은 1000만원 수준”이라며 “부실 대기업에는 수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는데, 과연 무엇이 모럴 해저드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지난해 생활고로 숨진 ‘성북구 네 모녀’ 분들이 만약 저희를 찾아오셨다면 어떻게든 길을 찾아드렸을 겁니다.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자신의 권리입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