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시회를 통해 길을 열어준 하나님은 프랑스와 독일, 영국 전시회까지 이끌어 주셨다.
해외 전시회는 그동안 내게 재료를 후원해 준 명신당 필방을 통해서 찾아왔다. 재밌는 건 하나님께서 그 길을 어느 스님을 통해 열어주셨단 점이다. 당시 명신당엔 독일에 살고 있다는 스님이 종종 찾아왔다. 명신당 주선으로 만난 그는 독일에 갤러리를 갖고 있다고 했다. 의수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던 날 눈여겨 봤는지 그는 내게 독일 현지 문화원과 연결해 줄 테니 전시회를 한번 여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2001년 프랑스 파리 제9회 개인 전시회와 같은 해 독일 베를린 주독일한국문화원에서의 제10회 개인 전시회로 이어졌다. 이 전시회에서 난 처음으로 작품 활동 시연(퍼포먼스)을 했다. 당시 관중들의 반응이 좋아 이후에도 계속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2002년엔 독일 함부르크에서 제11회 석창우 초대전을 열었고, 곧바로 영국 런던에서 제12회 석창우 초대전을 열었다.
그 무렵 한국에선 뜻깊은 소식도 들렸다. 한글을 소재로 문자 추상 기법을 통해 선보였던 내 작품 중 하나가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실린다는 소식이었다. 세종대왕을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한때 가장 한국적인 것, 한글에 꽂혀있던 내 관심사는 곧 스포츠 경기 속 운동선수들의 역동적인 모습으로 옮겨갔다. 2006년 독일에서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렸다. 월드컵 경기는 좋은 소재가 됐다. 종종 경기 영상을 캡처해둔 자료를 보고 그림을 그리곤 했다. 2006년 어느 날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작가가 경기도 광명에 있는 돔 경륜장 내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갤러리 관장은 내게도 전시회 개최를 제안했다. 스피돔갤러리 개관 1주년 기념 초대전에 참여하게 됐다. 마침 그동안 작업한 축구 관련 작품이 있기에 작품을 모아 전시회에 참여했다.
2007년 제18회 석창우 초대전이자 광명 스피돔갤러리 개관 1주년 기념전이 열렸다. 전시회를 둘러보던 갤러리 관장은 내게 경륜 장면을 그려 초대전을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당시 서예와 누드크로키를 통해 인체의 동세를 그리고 있던 때라 인체와 기계가 같이 있는 것을 그리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을 때였다. 일단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구경이나 하자며 경륜장에 들어섰다.
경륜장에서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선수들과 자전거가 하나 된 듯한 일체감은 나를 매료 시켰다. 놀라운 속도도 날 흥분시켰다. 출발할 때 선두에 있다고 골인할 때도 선두로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 꼴찌로 출발했다고 해서 골인할 때도 꼴찌로 들어오란 법도 없었다. 경기 내내 최선을 다해 페달을 밟은 선수만이 1등으로 골인한다는 걸 깨달았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