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의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일본 징용기업의 자산 현금화 조치가 4일부터 가능해졌다. 한국 대법원이 2018년 10월 30일 일본제철(신일철주금)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지 1년9개월 만이다. 일본제철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해 법원이 압류·매각 절차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전히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G7(주요 7개국)의 일원으로 선진국 중의 선진국임을 자랑해 온 일본이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하는 이중성을 보이는 것이다. 일본 정부 고위 인사들은 지난해 징용 피해자 변호인단이 일본제철 등의 자산 매각을 신청할 때부터 비자 발급 제한이나 무역 제재와 같은 보복 조처를 언급해 왔다. 지난달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한국 내)일본제철 자산이 현금화되면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 정부의 소극적 대응도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는 사법부의 독립적 판결에 관여하는 게 적절치 않고, 징용 피해자와 일본제철 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사법부 판결이라도 현실적으로 그 영향이 한·일 양국 관계를 심각하게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못 본 체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가 어렵다면 여당이라도 나서야 할 텐데 마찬가지다. 20대 국회에서는 문희상 국회의장이 ‘1+1+α(알파)’로 알려진 문희상 안(案)을 제안하는 등 타협책을 만들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번 국회에서는 윤상현 미래통합당 의원이 문희상 안과 같은 내용으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위한 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여당 의원은 아무도 발기인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자산 현금화 조치가 가능해졌어도 일본제철 자산 매각이 현실화하려면 꽤 시일이 걸릴 것이다. 양국 정부 모두가 마지막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에도 힘이 부치는 때에 양국의 경제 보복전이 확대된다면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일본이 결자해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한국 정부도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사설] 한·일, ‘징용기업 자산 현금화 파국’ 지켜만 봐서야
입력 2020-08-04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