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기자예요? 좀 기다리면 될 텐데 뭘 자꾸 물어봐요.” 청와대 다주택 참모의 부동산 처분 여부를 묻는 말에 핀잔 섞인 답이 돌아온다. 평소 친절했던 청와대 관계자들도 부동산과 관련된 물음엔 예민하게 반응한다. “청와대가 자청해서 약속한 건데, 기한이 다가오니 안 물어볼 수 없잖아요.” 애써 반박해보지만, 묻는 기자도 곤욕이다. 아무리 고위 공직자라지만 청와대 참모들도 ‘생활인’이고 자산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을, 그것도 기한 내에 맞춰 처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의 집’을 두고 언제 팔 건지, 어떤 걸 팔 건지 질문하면서도 이런 질의응답이 뭔가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다주택 참모에게 내린 ‘1주택 제외 매각’ 권고가 31일로 데드라인을 맞았다. 청와대는 처분 여부에 대해 적절한 발표 방식과 시기를 고민하고 있다. 지난 7개월간 때로는 의문을, 때로는 실소를 자아냈던 청와대발 부동산 매각 논란이 어쨌든 끝을 보게 되는 셈이다. 애초 이 다주택 처분 ‘쇼’를 기획한 당사자인 노 실장은 서울 반포동과 충북 청주의 아파트를 모두 팔기로 했다. ‘똘똘한 한 채’ ‘강남불패’ 등 뒷말을 낳았지만 어쨌든 노 실장은 무주택자가 되기로 했다.
다주택 매각을 ‘쇼’라고 부르는 것이 야박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청와대의 부동산 안정 의지를 폄훼할 뜻은 없다. 실제로 노 실장을 포함한 청와대 다주택 참모들이 주택 매각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려 했다. 모두가 집을 사려고 하는 시절에 갖고 있던 집을 내다 팔기는 쉽지 않다. 어느 참모는 다주택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억 단위의 증여세를 내야 했다고 한다. 다른 참모는 아파트 두 채 중 한 채를 팔고도 “서울 강남 아파트를 지켰다”는 비판을 받자 기자들에게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저마다 언급하기 힘든 개인사가 있었지만 고위 공직자의 솔선수범을 위해 부동산 매각을 실천했다.
다만 이런 실천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보여주기’였다는 점에서 ‘쇼’ 말고 달리 규정할 표현을 찾기 어렵다. 국민이 원한 건 부동산 시장 안정이지 청와대 참모의 아파트 처분이 아니었다. 참모 몇 명이 아파트를 판다고 부동산 시장이 잡힐 리는 없다. 시장만 안정된다면 고위 공직자가 집을 몇 채 가졌는지, 서울 반포동에 사는지 도곡동에 사는지 관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을 잡겠다는 정부의 호언장담과 달리 수도권의 집값은 폭등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의 부동산 매각 쇼를 바라보는 국민은 냉담한 관객이 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서도 노 실장의 매각 권고가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과 결이 다르다는 말이 나온다. 법률가 출신인 문 대통령으로선 이런 식의 반강제적 부동산 매각을 달갑게 여길 리 없다는 것이다.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이던 19대 국회 당시 당내 분란이 계속되자 시인 이상의 글귀가 회자됐다. 해법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잔기술로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는 뜻이었다. 부동산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청와대도 이상의 글이 지목하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부동산 정책에 절망하는 여론에 청와대는 다주택 참모의 아파트 매각이라는 기교로 응답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이후 청와대가 다주택 매각 여부로 진을 뺄 때 30, 40대는 ‘패닉 바잉’(Panic buying·집값 상승 공포로 매수에 나서는 행위)에 나섰다. 청와대의 부동산 기교는 문제를 해결하지도, 여론을 달래지도 못했다. 집을 파는 공직자, 지켜보는 국민, 취재하는 기자 모두가 유쾌하지 못했던 절망과 기교의 악순환, 이번 한 번으로 족하다.
임성수 정치부 차장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