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미확정 판결서까지 열람 추진… 알권리 넓히는 大法

입력 2020-07-31 04:03

대법원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민사·형사사건의 판결서까지 국민이 인터넷에서 열람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월 확정 사건의 판결서에 대한 인터넷 열람제도를 전면 시행한 데 이은 후속 조치다.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동시에 재판의 투명성과 법관의 책임감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산하 재판제도분과위원회는 지난 27일 회의에서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는 헌법 109조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대한 해석만으로 미확정 사건의 판결서를 공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확정 사건의 판결서 공개에 대한 근거 규정은 2011년부터 민사·형사소송법에 마련돼 있지만, 미확정 사건의 판결서를 공개할 명시적 근거는 없다는 논란을 일단락시킨 것이다.

대법원이 그간 미확정 사건의 판결서 공개를 망설이게 했던 다른 쟁점은 판결서 정보공개 업무를 맡은 공무원의 면책 여부였다. 대법원은 확정 사건 판결서의 경우 이름·주소 등 개인정보를 가리고 제공해왔다. 이에 대해 민사·형사소송법은 ‘개인정보 보호조치를 한 법원 공무원은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것이 아니면 열람 및 복사와 관련해 민사·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면책 조항을 두고 있다. 개인정보가 완벽히 가려지지 않은 채 판결서가 공개되는 등 예외적 경우에 대한 법적 책임을 면제시켜준 것이다.

그런데 법원 내부에선 현행 면책조항이 미확정 사건의 판결서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에 재판제도분과위는 “공무원 면책규정이 없더라도 정책적 결단이 있다면 미확정 판결서를 공개할 수 있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다만 담당 공무원의 책임 소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실명화 조치를 강화하거나 보험가입 등 보완조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현재 대법원이 구축한 판결서 비실명화 사업소 인력은 90여명이고, 연간 최대 70만건의 판결서를 비실명화할 수 있는 수준이다.

미확정 사건을 포함한 판결서의 대국민 공개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지속 강조해왔던 사안이다. 하지만 일선 법관 사이에서는 신중론이 컸다. 계속 중인 상급심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사건 관계인의 사생활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였다. 미확정 사건의 판결서를 ‘빅데이터’로 모아 상업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2018년 4월 전국 법관 설문조사에서 “미확정 사건의 판결서 공개를 반대한다”는 응답은 민사는 70.1%, 형사는 78.25%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에 대한 고육지책이라는 뒷말도 나온다. 차관급 예우를 받는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할 기회가 사라져 일선 법관들의 업무 동력 중 하나가 사라졌고, 판결서 공개는 그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미확정 사건의 판결서까지 대폭 공개되면 국민의 평가에 더 많이 노출되는 만큼 하급심 법관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대법원은 미확정 사건 가운데 민사·행정사건 판결서를 우선 공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시행착오를 살펴 미확정 형사사건 판결서의 공개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지방법원의 부장판사는 “내부에서는 여전히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면서도 “정보공개 확대라는 대세를 거스르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