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주독미군 3분의 1가량 줄인다… 주한미군 영향 여부 촉각

입력 2020-07-30 04:02

미국 정부가 29일(현지시간) 독일에 주둔한 미군 3만5000명 가운데 약 1만2000명을 감축해 미국과 유럽 내 다른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우리는 더 이상 호구(the suckers)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국방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만1900여명의 주독미군을 재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당초 알려진 9500명보다 많은 규모다.

에스퍼 장관은 감축되는 미군 중 약 5600명은 유럽에 있는 다른 나라에 배치되고, 약 6400명은 미국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군대 이동은 수주 내 시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AFP통신은 재배치되는 지역은 폴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발트해 주변국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감축 규모 가운데 절반가량을 유럽에 주둔시키는 건 러시아와의 긴장 관계를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AP통신은 미 국방부 당국자를 인용해 주독미군이 실제 재배치되기까지는 수십억달러가 들고 몇 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주독미군 감축 방침을 직접 언급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그들은(독일) 우리를 오랫동안 이용해 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호구’ 발언은 동맹관계를 안보보다는 비용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인식을 다시한번 드러냈다는 평가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회원국 중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독일이 더 많은 방위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압박해왔다.

독일에는 미국의 유럽·아프리카사령부가 위치해 있다. 주독미군은 해외 파병 미군 중 최대 규모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내 미군 활동에 핵심 역할을 해왔다.

이 때문에 주독미군 감축은 나토를 중심으로 한 유럽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다. 미국 내에선 주독미군 감축이 나토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약화로 해석돼 러시아의 침략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AP통신은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에서도 ‘러시아에 대한 선물’이라는 비판이 나온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지 못하면 이 계획이 실행될지 불분명하다”고 평가했다.

주독미군 감축을 계기로 주한미군 감축설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은 최근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국방부가 백악관에 주한미군 감축 관련 어떠한 제안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은 상태다. 그러나 워싱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연계해 주한미군 감축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은 대선 공약이 될 정강정책 초안에서 동맹을 대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를 ‘갈취(extort)’라는 표현으로 비판했다. 민주당은 대선에서 승리하면 미국 우선주의를 가장 먼저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권지혜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