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3종협회, ‘준가맹단체’ 강등 최악 면했다

입력 2020-07-30 04:02
이기흥(앞줄 오른쪽) 대한체육회장과 임원·이사들이 2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이사회를 열고 철인3종 국가대표였던 고 최숙현 선수의 사망 사건과 관련한 영상을 보고 있다. 체육회 이사회는 대한철인3종협회에 대한 관리단체 지정을 의결했다. 연합뉴스

대한체육회가 철인3종 선수 고(故) 최숙현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대한철인3종협회를 관리단체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철인3종협회는 모든 권리를 상실하고 체육회 지정 관리위원회에 운영을 위탁한다. 체육회는 철인3종협회로부터 영구 제명된 경주시청의 김규봉 전 감독, 주장 장모씨의 재심 신청을 기각해 기존의 징계를 확정했다.

체육회는 29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제36차 이사회에서 긴급 안건으로 철인3종협회 관리 단체 지정에 관해 심의했다. 이사회 직후 이기흥 회장은 “철인3종협회를 체육회 관리단체로 지정하기로 했다. 최숙현 사안으로 인해 책임 소재를 더 분명히 하자는 의미”라며 “협회 내부 문제점을 소상히 살피고 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숙현은 경주시청 철인3종 팀에서 뛰는 동안 줄곧 김 전 감독, 장씨, 팀닥터 안주현씨 등에 가혹행위를 당한 뒤 지난 2월부터 철인3종협회 등 공식 기관에 피해를 호소했다. 하지만 협회는 적극적인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최숙현은 지난달 26일 세상을 떠났다.

체육회 관리단체운영규정에 따르면 최숙현 죽음에 책임이 있는 철인3종협회는 기존의 모든 권리와 권한이 중지되고 체육회가 구성하는 관리위원회가 전반적인 협회 업무를 관장한다. 기존 철인3종협회 임원진도 모두 해임된다.

이날 이사회 직전엔 현재 체육회 인정단체인 철인3종협회의 ‘준가맹단체’ 강등 가능성도 제기됐다. 강등될 경우 체육회가 지급하는 인건비나 경기력 향상지원금 등이 크게 줄게 된다. 철인3종 선수 가족과 지도자들은 그 영향이 전국체전 정식종목 제외나 실업팀 해체 등으로 이어질 걸 우려했다. 이에 이사회장엔 3~40명의 선수와 가족 등이 방문해 “준가맹단체 강등은 폭력 피해자들에게 운동할 곳을 뺏는 것”이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체육회 이사회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예산 축소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관리단체 지정을 결정했다. 이 회장은 “준가맹단체가 되면 여러 불이익을 받아 선수 진로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고심했다”고 설명했다.

상급기관인 체육회도 사건 방조의 책임에서 자유롭진 않다. 이 회장은 “조직문화를 바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이사회에선 피해자 선제적 보호 및 가해자 엄중 징계, 스포츠 인권 감시체제 운영, 합숙훈련 허가제 도입, 인권교육 강화 등 스포츠 폭력 추방을 위한 다양한 수습 방안들도 함께 논의됐다.

최숙현의 아버지 최영희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숙현이 죽음으로 선의의 피해 선수들이 생길까봐 우려했는데 관리단체 지정은 최선의 결정”이라며 “체육회도 책임이 많기에 관리위원회가 빠른 시일 안에 협회를 정상화해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선수·지도자들은 관리단체 지정을 반기며 비극이 반복되지 않길 기대했다. 경주시청 피해 선수 A씨는 “다른 피해자들도 많은데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최숙현법 통과를 통해 선수들의 피해 호소가 빠른 조치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체육회는 이사회를 마친 뒤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고 김 전 감독과 장씨, 또 다른 가해자로 지목된 김모 선수의 재심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폭행 사실을 뒤늦게 인정하고 사죄한 김 선수는 철인3종협회로부터 10년 자격정지 징계를 받고 감경을 원했지만, 재심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