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올리자”-“전세난민될 판” 집주인도 세입자도 울상

입력 2020-07-30 00:03
참여연대를 포함한 113개 시민단체가 29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 임대차 3법 도입 관련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법안 도입을 촉구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임대차 3법을 모두 통과시켰다. 윤성호 기자

서울 강북구에 사는 40대 김모씨는 퇴근 후 매일 저녁 경기도 고양시로 아파트 탐방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집주인이 계약 갱신을 위해 제시한 전세금 1억원 인상 요구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는 “3개월 전만 해도 전세 시세가 2년 전 계약 때보다 5000만원 정도 오른 가격에 형성돼 있었는데 2배를 부르니 막막했다”며 “2년마다 ‘전세 난민’이 되느니 힘들더라도 교외에 집을 사는 것이 낫겠다”고 말했다.

전월세 임대료를 직전보다 최대 5% 이상 올리지 못하는 임대차 3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머리를 싸매고 있다. 매물을 월세로 돌려버리는 집주인이 나타나는가 하면 월세를 일부 부담하는 대신 전세금을 낮추는 ‘반전세’를 찾는 세입자들도 나타나고 있다.

29일 서울 일대를 돌아보니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전세가 인상을 문의하는 전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영등포구의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집주인들이 확실히 (임대차 3법이 통과되면) 전세금을 시세대로 못 받지 않겠느냐는 불안감이 있다”면서 “‘올릴 수 있을 때 (전세금을)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문의를 해 온다”고 말했다. 마포구의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여름철이 부동산 비수기인 만큼 임대차 3법이 통과되는 가을 이후에는 전세가가 본격적으로 오르지 않겠느냐는 말이 많다”고 했다.

반전세나 월세로 틈새시장을 노리는 집주인도 늘고 있다. 마포구의 다른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집주인들 중에는 신혼부부 세입자들을 중심으로 월세를 받고 전세가를 30% 정도 내리는 반전세를 먼저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고 소개했다. 서초구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갭투자를 최소화한 다주택자들에게는 시장 상황을 보며 전세 매물을 숨기느니 월세로 전환하는 게 훨씬 편하다”고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도 ‘세입자에게 반전세 계약을 권하려고 하는데 계약 조건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서울의 전세 물량은 공급보다 수요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이다. KB국민은행이 집계한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지난 20일 180.1을 기록했다. 전세 대란의 끝자락이던 2015년 11월 둘째 주(183.7) 이후 최고치다. 수치가 100보다 높으면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임대차 3법을 앞두고 전세 계약을 하려는 세입자들에게 매매를 권하는 집주인들도 있다. 당장 부과될 세금을 줄일 수 있고 현금도 확보할 수 있어서다. 내년 1월 결혼을 앞둔 오모(31)씨는 최근 구로구의 한 오래된 아파트를 4억6000만원에 구입했다. 원래는 전세 계약을 하려고 했지만 집주인이 “앞으로 전세가가 폭등할 테니 오히려 매매하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오씨는 “정책 변동이 심해 2년마다 두려움에 떠느니 어떻게든 주택을 사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황윤태 정우진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