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에서] 교회는 재편돼야 할 기존 패권인가

입력 2020-07-30 04:06

“정권 실세인 386들이 반교회적인 사회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는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교회를 압박하지 않겠지.” 요즘 교계 행사에서 만나는 목회자들로부터 비슷한 맥락의 말을 자주 듣는다. 정부가 교회를 백안시하고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불만이다. 단초는 지난 2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의 발언에서 비롯된 것 같다. 총선을 두 달 앞두고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총선이 시장과 종교, 언론 분야 등 기존 패권이 재편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개신교를 정권의 입맛에 길들이려는 것이냐는 비판에 대해 그는 “전광훈 목사로 상징되는 극우화된 기독교와 온건한 기독교 간에 구별이 시작됐고 이것이 총선을 통해 드러날 것이라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 반응은 냉랭했다.

지난 6월 말 정의당과 국가인권위원회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들고나오면서 분위기는 더 뒤숭숭해졌다. 대다수 교회와 목회자들이 반대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권위까지 나선 것은 한마디로 정부가 한국교회의 신앙고백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지난 8일 교회 소모임을 금지한다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발표에 교계는 격앙했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등 보수와 진보 측이 모처럼 한목소리로 성토했다.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책임의 일단이 교회에 있는 것으로 여긴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이를 철회하라는 청와대 청원이 쇄도하는 등 반발이 거셌다. 지난 24일 이 조치는 중단됐지만 정부에 대한 교회의 분노는 생채기투성이로 남았다.

나는 정부가 의도를 갖고 일련의 발언이나 행동을 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이 전 원내대표의 언급, 인권위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 정 총리의 소모임 금지 결정 등은 나름대로 숙고의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이 전 원내대표와 정 총리는 신앙이 돈독한 기독교인이 아닌가. 다만 교계 전반의 정서는 내 의중과 다르다는 점을 정부가 알았으면 좋겠다. 정부가 불온한 방향성을 설정하고 교회를 그 틀 안에서 규율하려 한다고 보는 시각이 꽤 많다. 정교분리 국가에서 쌍방이 서로의 영역에 간여할 이유가 없지만 갈등을 낳을 까닭은 더더욱 없다. 개신교는 가톨릭, 불교와 달리 위계가 엄격하지 않고 신앙관이나 이념적 간극이 꽤 크다. 양 끝 중 한쪽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주장과 행태를 보여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한국교회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감수성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회를 도외시하거나 적대적 관계를 맺으면서 정부의 정책 의지를 제대로 구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교회의 정서와 기류를 정확하게 읽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모임 금지와 관련, 교회가 대대적으로 들고일어난 이면에는 소통 부재가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겠다는데 어느 교회, 어떤 목회자가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겠는가. ‘성가대는 되는데 성가대 연습은 안 된다’는 식의 코미디 같은 기준이 제시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요청이 이어지니 반발한 것이다. 개신교를 담당하는 정부 관계자들과 교회 측 인사들 간에 제대로 된 의사확인이 없었다는 후문이다. 정부의 결정에 교회가 반발하지 않을 것으로 안이하게 생각했었음이 확실하다. 총리실과 문화체육관광부 종교담당 공직자의 업무수행 능력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교회가 하는 일이 다 옳아서 정부가 경청하라는 것이 아니다. 갈등과 분열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교회는 화해와 통합을 이루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향한 차가운 시선이 상존하지만 대부분은 공교회적 사역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다. 정치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닥다리다. 결코 재편돼야 할 기존 패권이 아니라는 생각을 교회가 갖게 될 때 정부는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정진영 종교국장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