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의 ‘남북 경제협력 합의서’ 의혹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인사청문회에서 처음 의혹을 제기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28일 출처에 대해 “신뢰할 만한 전직 고위 공무원”이라고 밝혔다. 박 후보자는 “제보자의 실명을 밝히라”며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50분쯤 박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재가했다. 박 후보자 임기는 29일부터 시작된다.
30억 달러의 대북 지원 내용을 담은 경제협력 합의서의 진위를 따지기 위해서는 우선 누가 제보했는지가 주요 쟁점으로 꼽힌다. 제보자를 특정할 수는 없더라도 당시 동행했던 인사를 상대로 진위를 파악할 순 있다.
2003년 대북송금 특검 당시 자료를 살펴보면 박 후보자가 2000년 3~4월 송호경 조선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접촉할 때 동행한 인물은 당시 김보현 국정원 3차장,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등이다. 이외에도 6·15 남북 정상회담에 깊숙이 관여했던 인사들로는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 서영교 국정원 5국장, 서훈 과장(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이 거론된다.
주 원내대표는 ‘전직 고위 공무원’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협력 합의서가 진짜라면 정부도 보관하고 있을 것이라는 이유로 문 대통령이 직접 확인할 것을 요구했다.
주 원내대표는 통합당 정보위원 기자간담회에서 “문건이 진짜라면 평양에 한 부가 있을 테고 청와대나 국정원 등에 보관돼 있을 것이다. 대통령께서 이런 이면 합의가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후보자에게 직접 확인하거나 협상에 깊숙이 관여했던 서훈 당시 국정원 과장이 지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있기 때문에 확인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후보자는 이면 합의서 자체가 가짜라고 주장한다. 합의서에 본인 서명이 있지만 위조됐다는 것이다. 박 후보자는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주 원내대표가 인사청문회에서 제시한 소위 30억 달러 남북경협 이면 합의서는 허위·날조된 것으로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며 “(주 원내대표 주장의) 위법성을 검토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 이미 (당시) 특사단에 문의한 바 ‘전혀 기억이 없고 사실이 아니다’는 확인을 받았다”고 맞섰다.
통합당은 박 후보자가 이면 합의서를 두고 네 차례 말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문건이 가짜라면 줄곧 “위조된 문서”라고 주장했을 텐데 청문회에서 “기억나지 않는다” “논의는 했지만 합의문 작성은 안 했다”는 식으로 말을 바꿨다는 것이다.
정보위 간사인 하태경 의원은 “주 원내대표가 이면 합의서를 들었을 때 (박 후보자) 즉답은 ‘사실이 아니다’였으나 두 번째 질의에서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고, 오후엔 ‘위조’라고 했다”며 “비공개 때는 ‘논의는 했지만 합의문 작성은 안 했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과 함께하는 여당이라면 대통령의 판단에 도움을 주기 위해 국정조사에 찬성해 달라”고 요구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통합당이 불참한 채 열린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박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를 채택했다. 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은 “문서의 진위는 알 수 없는 상황이고 조기에 밝혀지지도 않을 것”이라며 “후보자가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고, 야당에서도 다른 증거를 내놓지 못하기 때문에 청문 채택 연기 등은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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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희정 김이현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