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北, 6·15 협상 초기부터 현금 요구… 단호히 거절”

입력 2020-07-29 04:03
28일 오전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가 서울 여의도 자택을 나서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는 6·15 남북 정상회담 협상을 위해 2000년 3~4월 사이 네 차례 송호경 조선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막후 접촉을 가졌다. 당시 북측은 협상 초기부터 현금 지원을 끈질기게 요구해 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박 후보자가 북측의 요구에 난색을 표하면서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다 그해 4월 8일 전격적으로 정상회담 합의가 이뤄지게 된다.

박 후보자는 2008년 6월 서울대 6·15 연석회의 초청 강연에서 6·15 정상회담의 막후를 상세히 설명했다. 당시 강연 원고를 보면 박 후보자는 2000년 3월 9일 싱가포르에서 송 부위원장과 상견례 성격의 비공식 접촉을 했으며 3월 17일과 22일, 4월 8일 등 중국에서 3회에 걸쳐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특사회담을 가졌다.

박 후보자는 북측이 1차 회담에서부터 현금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박 후보자는 강연에서 “북측의 현금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며 “정상회담 후 교류협력을 통해 상업차관과 인도적 차원의 지원은 가능하지만 우리 예산 절차상 (현금 지원은) 불가능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1차 회담 결렬 닷새 후 2차 회담이 열렸으나 역시 현금 지원을 둘러싸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그로부터 다시 10여일이 지난 4월 8일 3차 회담에서 양측은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하게 된다. 박 후보자는 “합의 후에 안 사실”이라며 2차와 3차 회담 사이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과 국정원이 따로 접촉했다고 밝혔지만 세부 사항은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 측은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현금 지원 문제에서 한 발짝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국정원장이던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회고록 ‘피스메이커’를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 후보자에게 “정상회담 선물로 우리가 현금 1억 달러를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마지막 협상에 임하라”고 훈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1억 달러 지원 문제는 노무현정부 시절이던 2003년 대북송금 특검에서 규명됐던 부분이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이른바 ‘이면 합의서’에 나타난 투자 및 경제협력차관 25억 달러, 인도적 지원 5억 달러와는 차이가 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