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스트롱맨’ 로드리고 두테르테(사진) 대통령이 코로나19 백신을 얻기 위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고개를 숙였다. 두 나라는 남중국해 영유권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의회 국정 연설에서 “나는 4일 전 시진핑 주석에게 ‘우리가 코로나19 백신을 먼저 얻을 수 있을지, 그게 아니면 살 수 있을지’ 간청했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필리핀은 코로나19 백신 확보를 위해 3상 임상시험에 들어간 미국, 중국, 영국과 접촉하고 있다.
필리핀은 동남아 국가 중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코로나19 피해가 큰 곳이다. 누적 확진자는 8만2000명, 사망자는 1900명을 넘어섰다. 필리핀에서는 지난달 수도 마닐라 등 위험지역의 방역 수위를 완화한 이후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하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그간 코로나19 대응법으로 “봉쇄 조치를 어기면 사살하라”거나 “마스크 사기범들을 묶어 강물에 던져라”는 극단적 발언을 내놨다. 그는 이날 1시간30분 넘게 이어진 국정 연설에서도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 대책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고 SCMP는 전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연설에서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대립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는 “중국은 무기를 갖고 있지만 우리는 없다”며 “대안은 전쟁을 하는 것인데 우리에겐 그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필리핀은 1970년대 경제발전을 위해 대중 관계를 정상화했지만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가 불거지면서 틀어졌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매장된 석유와 천연가스, 해상운송로 확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영유권 주장을 해왔다. 필리핀은 중국을 국제 상설중재재판소에 제소해 2016년 ‘중국의 영유권 주장엔 법적 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최근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은 완전히 불법”이라고 주장한 건 이 판결을 근거로 한 것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2016년 취임 이후 남중국해 관련 언급을 자제하면서 대중 유화책을 펴고 있다. 중국은 필리핀의 최대 교역국이자 주요 투자국이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