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100일도 안 남았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대선 D-100을 맞아 일제히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뒤지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모두가 미 대선이 치러지는 11월 3일을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그다음 날에 주목하는 이들이 있다. 11월 3일은 미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의 미래가 결정되는 날이지만, 11월 4일은 지구의 운명이 결정되는 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1월 3일 트럼프 대통령 재선이 확정되면 11월 4일 미국은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할 예정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국의 파리협약 탈퇴가 예정된 11월 4일을 지구의 운명이 걸린 디데이로 보고 D-100이던 지난 27일 ‘기후 카운트다운(Climate Countdown)’이란 시리즈를 시작했다. 가디언은 시리즈 소개 글에서 “앞으로 100일 후 기후위기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며 “미국이 파리협약을 철회하면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는 전 세계의 노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미 대선은 민주주의, 인종 정의, 대법원을 비롯해 많은 문제들의 미래를 위한 투표지만 그밖에 지구의 미래에 대한 집단적 책임을 취하도록 미국이 역할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라는 문제가 달려 있다”며 “우리는 이번 대선 보도의 중심에 기후위기 문제를 놓고자 한다”고 밝혔다.
파리협약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2015년 195개국이 서명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협약이다. 이번 세기 말까지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을 2도 이내로 막는다는 큰 목표 아래 서명국 모두가 감축 목표와 실행 계획을 세우고 시행하도록 약속했다. 현재까지 기후위기 문제와 관련해 가장 진전된 국제적 공동 노력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는 사기”라고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몇 달이 지난 2017년 6월 파리협약에서 미국이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지난해 11월 4일 유엔에 파리협약 탈퇴를 공식 통보했다. 탈퇴는 통보 후 1년이 지나면 효력이 발생한다. 파리협약은 올해 11월 3일까지 탈퇴가 불가능한 조건이 걸려 있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11월 4일 탈퇴가 이뤄지도록 준비를 해놓은 것이다.
가디언 시리즈의 첫 기사는 ‘트럼프가 재선되면 기후위기에 대한 세계의 투쟁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나’라는 제목으로 작성됐다. 파리협약 체결 당시 미국 측 협상 대표를 맡았던 토드 스턴(전 미국 기후변화특사)은 이 기사에서 “바이든이냐 트럼프냐의 선택은 미국만을 위한 결정이 아니며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세계를 위한 결정”이라면서 “트럼프가 이기면 파리의 목표는 매우, 매우 어려워진다”고 주장했다.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파리협약을 주도했다. 그리고 미국의 탄소 배출량을 2005년 수준 기준으로 2030년까지 26∼28%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파리협약 탈퇴를 발표했다. 이어 지난 4년간 화석 연료를 적극 지원했고, 100여 가지에 달하는 환경 보호 관련 규정을 취소하거나 약화시켰다. 트럼프에 맞서는 바이든 후보는 파리협약에 재가입하고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0으로 줄이겠다는 공약을 최근 발표했다. 또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4년간 2조 달러(약 2401조원)를 청정에너지 인프라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희망이 미 대선에 달렸다”는 게 가디언의 시각이다. 미국과 세계를 넘어 지구의 운명을 결정하는 선거가 다가오는 것이다. 역대 가장 치열할 것이라는 이번 미 대선이 더 뜨거워지고 있다.
김남중 국제부장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