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번지면 우리가 가장 먼저 얻어맞을 가능성 높다”

입력 2020-07-28 04:04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기후위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지금 이대로 물질과 성장에 매달려가도 되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마련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게 성경에서 말하는 회심과 회개이고, 우리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고 있다. 분명히 희망은 있다”고 말했다. 권현구 기자

“아시아는 ‘아시아몬순’이라 부르는 여름철에 한꺼번에 내리는 비로 35억명의 인구가 농사를 지어 살고 있다. 그런데 기후위기로 비의 양과 내리는 시기에 변화가 일어나면 곡물 생산량의 변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명피해를 냈고 중국 일본 인도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곳곳에 물폭탄을 떨어뜨리고 있는 장맛비에 대해 물었더니 기후변화와 식량 위기에 대한 답이 돌아왔다. 국립기상과학원 초대 원장을 지낸 조천호(59) 경희사이버대 기후변화 특임교수를 만났다. 그는 20년 가까이 기후위기를 연구하며 활발한 대중 강연을 통해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는 대기과학자다.

-기후변화가 우리 식량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인가.

“금융위기가 됐든 코로나19가 됐든, 그래도 먹고살지 않나. 그런데 마트에 갔더니 먹을 게 없더라, 이건 계산이 불가능한 위험이다. 우리는 생존을 위한 자원과 에너지, 식량 이 모든 것을 외국에서 들여오는 나라다. 지금은 투발루나 방글라데시처럼 가난한 나라들이 기후위기 피해를 보고 있는데 산업화된 나라까지 번지면 우리가 가장 먼저 얻어맞을 가능성이 높다. 작년 호주에서는 안보 전략가들이 기후변화로 아시아에서 식량난민이 발생해 호주로 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 논의했다.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우리는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데, 호주는 그런 걱정을 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기후 이슈는 미세먼지였다. 강연에서 ‘미세먼지가 불량배라면 기후변화는 핵폭탄’이라고 했다.

“미세먼지는 위험 자체가 단순하다. 반면 기후위기로 기온이 상승한다는 건 단순히 더워서 살기 힘들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구 조절 시스템이 붕괴되는 어마어마한 위기다. 지구 조절 시스템이 붕괴되면 가뭄으로 식량과 물이 부족해지고, 해수면 상승으로 거주지가 물에 잠기면서 우리의 생존 근거가 무너진다. 미세먼지는 발생된 지 하루나 이틀 만에 햇볕과 반응해 없어진다. 그런데 이산화탄소는 한 번 배출되면 100년 이상 대기 중에 남고, 일부는 1000년 이상 누적된다. 그래서 미세먼지는 우리 세대의 문제이지만 온실가스는 다음 세대에게 위험을 넘겨버리는 거다.”

-우리나라는 ‘기후악당’으로 불린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 대기 질은 OECD 36개국 중 35~36위, 기후변화대응지수는 61개국 가운데 58위…. 거의 모든 지표에서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악당은 국제 시민단체들이 정하는 건데, 평가를 했다 하면 딱딱 걸려 들어가는 게 대한민국이다. 이명박정부 때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녹색성장을 한다면서 실질적으로는 온실가스 배출을 늘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산업구조 자체가 중화학공업 중심이다. 경제성장에 매달리다보니 어떤 식으로든 값싸게 에너지를 공급해야 되고, 중화학공업도 유지해야 되고. 다른 나라들은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상당한 전환을 이뤘는데 우리는 과거의 발전 방식과 기존 산업 구조를 고수하고 있다.”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과 그린 뉴딜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선진국 중에 석탄발전소를 새로 짓는 나라는 없다. 유럽 대부분은 지금 가동하고 있는 것도 10년 이내에 완전히 닫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우리는 앞으로 10년 안에 석탄발전소 7개를 짓고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까지 짓겠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면서 한 번도 가치 있는 일에 리더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린 뉴딜도 눈치 보며 뒤따라가는 모양새다. 유럽과 미국의 그린 뉴딜은 석탄·석유 같은 화석연료를 쓰지 않겠다는 기후위기 대응과 불평등 해소라는 두 가지가 같이 맞물려 있다. 한국의 그린 뉴딜은 경제성장 틀 안에서 이뤄지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

-기후위기와 불평등 해소의 연계성을 설명하면.

“전 세계 음식물의 3분의 1이 쓰레기로 버려진다. 마트에 진열된 수많은 물건도 대부분 쓰레기장으로 갈 신세다.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라는 순환 구조를 끊어야 한다. 대량생산을 하려면 지구로부터 원자재와 에너지를 착취해야 되고, 대량소비 후 온갖 쓰레기를 지구에 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부족해서 결핍이 생긴 것이 아니라 이미 과잉인 상황이다. 불평등은 우리가 아끼고 나눠서 해결해야 되는 문제다. 전 세계에서 상위 8명이 하위 50%보다 많은 부를 가지고 있고, 온실가스도 상위 10%가 절반을 배출한다.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

-최근 우리 산업계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온실가스 감축 계획안을 그대로 따르면 최대 130만명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그럼 지금까지의 성공 방식이 미래의 생존을 보장할 것이냐고 묻고 싶다. 메이저 자본들은 이미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아마존과 구글, 애플은 자신들이 재생에너지원을 통해 발전된 전력을 쓰는 것은 물론 공급 업체들에도 부품을 재생에너지로 제조하지 않으면 납품받지 않겠다고 했다. 유럽연합은 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물건의 제조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썼다면 탄소세를 매기겠다고 했다. 제품에 그런 세금이 얹히면 우리는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유럽은 탄소세를 통해 결국 자체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할 텐데 뒤따라가는 우리 입장에서는 사다리를 걷어차이게 될 수 있다.”

-환경운동가들은 절제와 검소를 강조한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에어컨을 적정 온도로 켜라는데, 편리함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겠다는 개인의 감수성도 중요하지만 기후위기는 나만 바뀌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나를 바꾼다는 개인의 윤리가 증폭되는 게 바로 정치다. 우리가 믿는 가치를 법으로 만들어주고 집행할 사람을 잘 뽑아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도 궁극적으로 정치가 바뀌어야 하고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만난 사람=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