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타는 죽고 아시아나는 살고?… 같은 노딜 엇갈린 희비

입력 2020-07-28 00:03 수정 2020-07-28 00:03
사진=연합뉴스

항공업계 ‘빅딜’ 2개가 모두 무산될 위기에 처했지만 직원들의 운명은 기업 규모에 따라 엇갈릴 전망이다. 소규모 저비용 항공사(LCC)인 이스타항공은 파산이 불가피한 반면 대형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은 정부가 나서서 국유화 등 ‘살길’을 찾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사의 노딜(no deal)이 확정되면 ‘대마불사’ 양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본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아시아나항공은 27일 HDC현대산업개발의 재실사 요청에 대응책을 고민하고 있다. HDC현산은 전날 “아시아나항공의 부채가 급격히 늘어나는 등 인수 조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재실사를 요구했다. 업계에선 채권단과 금호산업이 HDC현산의 요청을 계약 파기를 위한 명분 쌓기로 판단하고 거절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HDC현산과 갈등을 겪고 있는 아시아나항공의 모습은 최근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M&A)이 무산된 이스타항공과 ‘판박이’다. 두 항공사 모두 경영 실패와 재무 부실을 겪던 끝에 지난해 매물로 나왔다. 각각 HDC현산과 제주항공이라는 매수자를 찾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계약 체결이 거듭 미뤄졌다. 제주항공은 지난 2일 이스타항공에 “미지급금 1700억원을 해소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통보해 명분을 챙긴 후 23일 공식적으로 계약을 파기했다.

그러나 두 항공사의 직원들이 체감하는 위기감은 엇갈린다. 정부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스타항공은 파산을 막기 어렵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는 “국토부가 ‘이스타항공이 플랜B를 내놓으면 지원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자본잠식 상태인 이스타항공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건 공공연하다”며 “사실상 지원이 없다고 꼬리 자르는 모습”이라고 했다. 이스타항공 직원들이 제주항공의 책임을 물으며 총투쟁에 나선 것도 ‘인수 외의 살길은 없다’는 생각에서다.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어떻게든 살릴 거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실제 산업은행은 M&A가 무산되면 계열사를 분리 매각하거나 출자전환을 통해 일시적으로 국유화한 후 감염병이 진정되면 새 매수자를 찾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부 직원은 고용 안정성 측면에서 HDC현산 대신 산업은행이 주인이 되길 기대하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노딜의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기업 위주로 지원을 선별하는 모습이라고 봤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고용 규모가 이스타항공은 1500명이지만 아시아나항공은 직접 고용만 1만명”이라며 “대량 실직을 막고자 정부는 이미 아시아나에 5000억원의 영구채와 1조7000억원의 차입 등을 지원해왔고 이번에도 파산까지 가게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선에 LCC 8곳이 경쟁하는 비정상적인 산업 구조도 양사의 엇갈린 운명에 영향을 미쳤다. 허 교수는 “장거리 국제선을 운항하는 곳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두 곳밖에 없다”며 “한 곳이 무너지면 운임료가 올라가고 외항사와의 경쟁에서 밀려나는 등 국가 경쟁력이 타격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단거리 국제선과 국내선 위주의 LCC 업체는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