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여당과 야당에 21대 국회 과제를 다르게 보고했다. 여당에는 일부 과제를 ‘의원입법’ 하겠다고 밝힌 공정위가 정작 야당에는 정부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말을 달리한 것이다. 의원입법은 규제심사 등 복잡한 과정 없이 곧바로 국회 제출이 가능하다.
27일 국회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달 18일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업무보고를 했다. 이후 이달 10일에는 미래통합당 의원들과의 별도 간담회를 가졌다.
공정위는 민주당 업무보고에서 총 24개 입법과제 중 8개는 의원입법을 하겠다고 밝혔다. 예산 확보, 기업부담 완화, 신속한 법안 처리를 고려해 의원입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의원이 이미 비슷한 법안을 발의한 경우 그것을 활용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통상적으로 정부입법은 국회 제출까지 입법예고, 부처협의, 사전영향평가, 규제심사, 법제심사, 국무회의 등을 거쳐야 한다. 반면 의원입법은 이 과정을 건너뛰고 국회의원 이름으로 바로 법안을 제출할 수 있다. 공정위가 일부 과제에 대해 지름길을 택한 것이다.
공정위가 의원입법으로 뽑은 과제는 △지자체 하도급분쟁협의회 설치 △하도급대금 결제조건 공시제도 △기술유용의 손해배상제도 강화 △표준하도급계약서 재개정 방식 추가 △공공 건설분야 발주 하도급 입찰결과 공개 △중소기업 과징금 분할납부 범위 확대 △지자체에 분쟁조정권한 부여 △플랫폼사업자의 책임과 의무 강화 등이다.
문제는 공정위가 야당에는 이 같은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것이다. 정무위 소속 야당 관계자는 “공정위가 보고한 자료에는 주요 입법 과제를 모두 정부입법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며 “여야 보고 내용이 다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여당 업무보고는 당에서 전체적인 입법 수요를 요청해 구체적으로 보고한 것”이라며 “야당에 보고할 때는 입법 과제 윤곽이 더 확실해졌기 때문에 정부입법만 보고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부가 주요 정책에 의원입법을 활용하는 것은 공정위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7·10’ 부동산 대책도 의원입법을 통해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기국회 전 7월에 대책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정부입법은 힘들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가 법안 통과 전 마땅히 받아야 할 평가를 피하고, 스스로 입법권을 포기한다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국회 관계자는 “정부가 의원입법을 빈번이 활용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일종의 ‘청부입법’과 같은 꼼수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