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충현교회는 과거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였다가 여러 내홍을 겪었다. 충현교회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담은 사진전 ‘그집, 충현’이 서울 종로구 갤러리 류가헌에서 다음 달 2일까지 열린다. 교회 전경을 비롯해 앞마당 주차장 첨탑 당회실 교육관 등의 사진에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평범해 보이는 본당 강대상 위의 가구들과 장의자는 당시 이 교회 장로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기증한 것이다.
충현교회가 모 교회인 양윤선(41) 작가는 교회를 ‘그집’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23일 갤러리 류가헌에서 만난 양 작가는 “이번 작업은 그집이 가진 1980년대 한국 문화유적의 가치를 탐색하는 일이었다”며 “누군가 80년대 한국교회사나 현대사 자료를 찾을 때 이 사진들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세상에 꺼내놓았다”고 말했다.
양 작가 가족은 85년 서울 영등포구에서 역삼동 집으로 이사했다. 교회에서 불과 20m 떨어진 곳이었다. 양 작가는 “당시 강남 이주 열풍이 불었던 역삼동에는 우리 가족처럼 이주자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끈끈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면서 “교회는 이곳에서 마을회관 혹은 문화센터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모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양 작가는 1997년 교회가 세습 문제로 논란을 빚자 마음에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났다. 양 작가는 “그 일 이후 내 마음은 교회에서 떠났고 2004년 독일로 유학을 오면서 몸도 떠났다”고 했다. 교회 설립자인 김창인 원로목사는 2012년 교회세습을 공개적으로 회개한 바 있다.
지난해 4월 귀국해 돌이 된 아들과 교회를 다시 찾은 양 작가는 아들이 교회 경사로의 옆 난간에서 미끄럼을 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30년 전 그곳에서 미끄럼을 탔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양 작가는 “그집이 틀린 결정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며 상처를 입었지만, 여전히 그리움과 추억이 있는 곳이고 지금의 나를 키운 공간임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작가는 지난해 봄부터 관객들이 종교적 관점을 떠나 객관적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대부분 차갑고 건조한 느낌으로 교회를 촬영했다. 그는 건축한 지 32년 된 충현교회에서 적지 않은 내부 공간이 낡았다는 이유로 증개축되어 원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우리 짧은 생애에 비추면 몇십 년이란 세월 동안 그 장소에 묶인 수많은 사람의 경험과 기억은 결코 쉽게 축적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물려받은 한국 기독교의 유산이고 한국 현대사의 유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