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문화계 전체가 숨죽이고 있을 때, 극상의 매력을 뽐내던 프로그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팬텀싱어 3’라는 음악 방송이었다. 성악을 기본으로 하지만, 크로스오버를 추구하며 국악인부터 뮤지컬 배우까지 다양한 경력의 참가자들이 4인조 팀으로 최종 선발되는 과정을 그린 경연 프로그램이었다. 참가자들은 모두 20~30대였고, 분야는 달랐지만 음악이라는 장르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다움 자체였다.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를 감탄하며 몇 달을 보냈는데, 그만 마지막 결승 방송에서 환상이 깨지고 말았다. 이전의 녹화 방송과 달리 결선은 문자 투표를 위해 생방송으로 진행됐다. 절정의 기량을 뽐내던 참가자 중 여러 명이 불안한 음정으로 노래했고, 불협화음이 자주 나왔다. 결선과 생방송이라는 환경 속 참가자들의 긴장을 고려하더라도 이전 방송과의 간격이 너무 컸다.
결국, 녹화 방송을 통해서 이들이 가진 좋은 소리를 제대로 전달해줄 수 있는 시간과 기술력이 확보됐던 것이다. 생방송에서는 아직 그만큼의 시간과 기술력이 확보되지 못했다. 끝이 그렇게 되니 허망하고 속상했다. 그런데도 방송 전부터 시작해 8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왔음을 생각하면 고마움을 넘어 경이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때론 시청률이 전부인 양 폄하되는 대중매체 속에서도 여전히 잘 준비된 예술은 사람들의 영혼을 감동하게 할 수 있음을 경험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특성상 누군가를 떨어뜨려야 하는 경쟁 구도였지만, 오히려 상대방의 손을 잡아줄 때 감동이 배가되며 모두가 살 수 있다는 진리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주 토요일 서울 종로5가의 한 공연장에서 연극 한 편을 관람했다. 1970년대 경기도 평택 안정리 기지촌에서 미군 ‘위안부’로 일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문밖에서’라는 작품이었다. 이 연극의 특이한 점은 실제 위안부로 살았던 3명의 여성이 전문 배우들과 함께 출연한다는 것이다. 조연이 아니다. 이들의 이야기였기에 주연이었다. 몇 해 전부터 직접 연기해 왔기에 처음은 아니라고 했다.
극 초반 대사의 흐름이 잠깐씩 끊겼고, 몇몇 대사는 웅얼거려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 할머니 배우들을 믿고 끝까지 온전한 관람을 할 수 있을까 염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잠깐의 어색함을 지나자 이들은 70년대와 2020년대를 오가며 무대 위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았다.
“뭘 안다고 남의 인생에 대해 지껄이냐”며 어설픈 동정과 판단을 거부하고, “나도 의미 있게 살고 싶어”라며 흐트러진 삶의 풍경을 단정히 정리하고 싶은 소망을 내비쳤다. 연극을 마치고,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이 있었다. 객석에서 할머니들의 불행했던 그 과거의 의미를 묻자 ‘오늘이 행복하다’고 답했다. 지난날로 삶을 묶어두지 않고, 자신에게 허락된 현재라는 은총의 시간을 누리는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찬란함이 엿보였다. 누군가의 불행을 보며 그렇게 되지 않음으로 인한 안심을 행복이라 착각하는 시대 속에 ‘애통하는 자의 복’을 깨닫게 하는 각성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TV에서 거리에서 공연장에서 예술을 통해 꿈을 노래하고, 아픔을 연기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안에 깃든 구원의 빛을 발견한다. 어려움 중에도 문화선교를 멈추면 안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문화와 예술이라는 두레박을 통해 오늘도 전 세계적인 재난 앞에서 그간의 오만과 방종을 참회하는 동시에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긷는 일’(사 12:3)을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다. 광야에 필요한 것은 신기루가 아니다. 물이다.
성현 목사(필름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