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말 방송이 나간 뒤로 사람들의 작품 문의가 이어졌다. 아내는 내게 새해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난 겉으론 당시 앓고 있던 C형 간염이 완치되는 것이라 답했지만, 속으론 다이아몬드 반지와 나 때문에 팔았던 결혼 예물을 다시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당시 팔았던 예물을 다시 살 돈을 되돌려 주려고 하자, 아내는 좋은 예물을 받았다 치고 대신 그 돈으로 차가 필요하다는 유학 간 아들에게 보태주자고 했다. 물론 아들도 괜찮다며 예물을 사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아내는 자기 뜻대로 하자고 했다. 결혼 예물은 결국 몇 년이 지나서야 다시 해줄 수 있었다.
아내 얘기를 하니 처음 성경 필사를 시도했던 때도 기억난다. 기도의 힘을 체험했던 순간이었다. 요양을 위해 머물렀던 전주 생활을 끝내고 서울에서 한문과 사군자를 연습하던 때였다. 슬슬 한글도 연습해야겠단 생각이 들어 폭 70㎝, 너비 135㎝ 정도 되는 전지를 놓고 글자 연습을 시작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열심히 글씨 연습을 하는 내게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의 친구분이 찾아오셨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집사님이던 그분은 내가 팔도 없이 서예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오셨다. 그는 내게 신명기 28장 1~14절 말씀을 써 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다. 620자 정도 되는 분량이었다. 그가 내민 종이는 내가 연습하던 전지보다 훨씬 큰 크기였지만, 글자는 작게 써야만 했다. 아직 작은 글씨를 쓰기가 어려웠던 나는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집사님은 그저 “기도하면 된다”고 하시며 “나를 위해 기도해주겠다”고 말씀했다.
적정한 금액도 주겠다고 했기에 난 경험 삼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에 들어간 처음 며칠은 온종일 작업해도 글씨가 도무지 작아지지 않았다. 그 말씀을 다 쓰려면 전지 10장 이상이 필요할 정도였다. 서서 작업해야 했기에 허리도 너무 아팠다. 하지만 집사님의 기도가 응답받았는지 사흘째 되던 날부터는 점점 글씨도 작아지게 되고 허리 통증도 사라졌다. 글자 크기가 조금씩 줄자 점점 재미도 생겨났다. 하루는 성경 구절을 쓰는데 글자가 자꾸 삐뚤게 되고 글씨도 잘 써지지 않았다. 집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은 작업이 잘 안된다”고 했다. 그러자 집사님은 “내가 몸살 기운이 있어 오늘은 기도를 미처 하지 못했다”라며 “다시 꼭 기도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기도의 위력을 체험했다. 당시만 해도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였는데 서서 가게 될 경우 어딘가에라도 기대지 않으면 몸을 지탱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기도하며 성경 필사 작업을 할 때만큼은 마치 발바닥에 빨판이라도 달린 것처럼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난 기도의 힘을 믿게 됐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