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세계적 경제위기는 과거 위기와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경제위기는 대부분 과도한 부채 누적이 금융위기로 연결되면서 발생했다. 외채 문제에서 촉발된 아시아 외환위기가 그랬고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도 각각 과도한 가계부채와 정부부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에 반해 이번 위기는 부채 문제와는 상관없이 방역 정책에서 불가피하게 초래됐다.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각국은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경제·사회적 활동을 중지시키는 봉쇄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생산과 소비, 교역이 급감하면서 경제활동이 빠르게 위축됐으며 고용시장은 2차대전 이후 최악으로 치달았다. 따라서 치료제만 나오면 경기가 빠르게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를 해볼 만도 하다. 그러나 막상 코로나19의 장막이 걷히면 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경기 회복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또 다른 경제위기일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바이러스가 사라지더라도 경제 여건이 쉽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위기 와중에 세계 공급망이 위축되고 보호무역주의와 자국 우선주의는 더욱 강화됐다. 얼어붙은 수요가 살아나고 공장이 가동되더라도 세계 교역이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2분기 경제성장률이3.3%를 기록한 주된 원인이 수출 급감이었다는 데서 알 수 있듯 세계 교역이 부진하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회복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생활방식 변화 등으로 서비스업이나 자영업 여건이 크게 악화돼 내수와 고용시장이 회복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물론 경기 부진이 반드시 경제위기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기가 부진한데도 자산시장은 계속 과열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이 그렇다. 위기 대응으로 푼 엄청난 유동성에 더해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로 인해 늘어난 차입금과 갈 곳 잃은 자금들이 높은 수익을 찾아 자산시장으로 끊임없이 유입되고 있다. 3000조원을 돌파한 시중유동성(M2)은 5월 한 달에만 35조원 늘었고 단기 대기성 자금인 M1도 5월까지 113조원이나 불어났다. 그 결과 주식시장의 올 2분기 일 평균 거래대금이 22조원으로 사상 최대였으며 신용잔고는 13조원에 달했다. 주택 가격은 정부 대책에 아랑곳없이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최근의 자산가격 움직임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함께 몰려가고 있는 현상은 과거 위기에서 익히 보아온 모습이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실물경제의 뒷받침 없이 유동성에만 의존한 자산가격 급등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 요인이다. 거시경제 정책 여력도 크게 떨어졌다.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재정적자 폭은 확대됐고 금리는 0% 수준에 근접했다. 쓸 수 있는 유효한 카드의 선택 폭이 축소된 것이다. 부동산 가격 급등에서 비롯된 정부 정책의 신뢰성 상실, 사회적 갈등 확대 등이 얼마 남지 않은 정책의 유효성마저 떨어뜨릴 수 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지금은 경기가 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정책 오류가 발견되면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 활용 가능한 정책수단 정비와 함께 새로운 수단을 개발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놓아야 한다. 정책 당국 간 긴밀한 협의 채널을 구축하고 정책 의지와 방향에 대한 일관된 대국민 소통으로 정책 신뢰성도 높여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만일의 경우 경제위기를 피하지 못하더라도 큰 생채기를 남기지 않고 지나가게 할 수는 있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