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때 옆집 언니와 철길에 앉아 있는데 잘 아는 언니와 내 친구가 머루를 한 자루씩 메고 철교쪽으로 지나갔다. 그런데 잠시 후 역에서 기차가 출발했고 철교 위에서 갑자기 달려오는 기차를 피하지 못해 20여m 아래로 떨어져 그 자리에서 둘 다 죽고 말았다. 다음 날 학교에서 친구의 빈 책상을 보고 나는 오열했고, 끔찍했던 현장의 모습은 끝없이 나를 괴롭혔다.
6학년 겨울 엄마가 슈퍼에 다녀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마침 영화를 보고 있어 짜증을 내며 끝나고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잠시 후 슈퍼에 가던 엄마가 경악을 하며 들어왔다. 석탄을 가득 실은 10량도 넘는 열차가 브레이크 고장으로 탈선해 순식간에 동네를 덮쳐 온통 아수라장이 됐다. 슈퍼, 관사, 근처 집들이 한 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건널목 관리 아저씨, 바둑을 두던 어른들, 슈퍼에 있던 사람들 모두 끔찍하게 죽고 말았다. 엄마 말을 듣고 바로 슈퍼에 갔으면 틀림없이 나도 이 세상에 없을 것이란 생각에 떨리는 가슴을 진정할 수 없었다. 동네는 하루아침에 초상집이 됐고 9시 뉴스에 특집으로 크게 보도됐다.
충격적인 두 사건을 겪으며 해는 왜 뜨고 지는지, 사람은 왜 태어나고 죽는지, 죽으면 과연 어디로 가는지 해답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하며 순서도 없고, 시간도 모르게 다가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렸다. 그러다 친구를 통해 한마음교회에 나갔다. 어느날 요한복음을 읽는데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내게 역사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부활이란 말이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처럼 비춰졌다.
‘누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나’는 목사님의 질문을 통해 십자가에서 어떤 분이 죽으셨는지 선명히 보이는 순간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예수님은 죽음의 두려움에 매여 종 노릇하던 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셨는데 나는 그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었다. 내 마음에는 하나님이 계실 자리가 없었다. 로마서 5장 8절에 내 이름 석자를 넣어 읽는데 감당할 수도 없는 눈물이 흘렀다.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 나는 그대로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참 주인으로 모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동안 나를 옭아맨 죽음의 공포에서 부활의 증인의 삶으로 바꿔줬다. 기쁨의 삶을 살기 시작할 때 건강하던 남편이 암 진단을 받았다. 순간 충격을 받았지만 ‘믿음의 시련이 없어질 금보다 낫다’는 말씀을 잡고 새벽마다 부르짖었다. 시련을 허락하신 분도, 피할 길을 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니 평강이 임했다. 수술을 마치고 20회의 항암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한 남편은 예수님을 만나고 지금 나의 든든한 동역자가 됐다.
아들이 6학년 때 학교 운동장에 나가 전도를 시작했다.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해 떡볶이와 간식을 해주며 복음을 전했더니 인원이 점점 늘어 일주일에 두 번씩 예배를 드렸다.
지금 나는 보육시설에서 일하고 있다. 이 땅에서 버림받고 고아가 됐지만 영원한 하늘나라가 있고,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해주신 예수님이 계시며, 형제를 위해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고백하는 교회 공동체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꼭 알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아동들을 양육하고 있다. 맡겨진 영혼들을 위해, 그리고 주와 복음을 위해 임마누엘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사명을 감당하길 원한다.
황승연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