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파행을 겪을 가능성이 커졌다. 박 후보자는 국회 정보위원회 청문위원들이 요청한 자료를 청문회 하루 전인 26일 제출했고 그마저도 내용이 부실했다. 청문회 시작 48시간 전까지 제출해야 하는 인사청문회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야당 청문위원들이 자료 검토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청문회 연기를 주장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증인 없이 진행될 예정이다. 미래통합당 측이 신청한 증인을 민주당이 무더기로 거부해 1명만 채택됐는데 그 증인마저 건강상 이유로 불출석하겠다고 통보했다. 맹탕 인사청문회가 될 게 뻔하다. 24일에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민주당이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보고서)를 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단독으로 의결했다. 이 후보자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과 관련한 추가 자료를 제출하면 채택을 논의하겠다고 야당이 여지를 줬는데도 민주당은 밀어붙였다. 과반을 앞세워 국회의 인사 검증 책무를 외면한 것이다.
대통령이 지명한 고위 공직자의 업무수행능력, 도덕성 등을 점검해 인사권 남용을 견제하고자 도입된 인사청문회의 취지가 훼손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당은 후보자 감싸기에 급급하고 야당은 망신주기식 질의로 후보자와 여당을 공격하는 기회로 여겨 왔다. 대통령은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는데도 후보자 임명을 강행해 왔다. 정권이 바뀌면 과거는 잊은듯 공수를 바꿔 같은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인사청문회를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법안을 전면 개편하거나 보완해야 한다. 정파적 입장에서 벗어나야 길이 보인다. 여당은 야당일 때, 야당은 여당일 때 입장을 염두에 둔다면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진행한 후 정책수행능력을 공개 검증하는 방식으로 이원화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는데 검토할 만하다. 국회가 부적격 기준을 만들고 여야 공동으로 이를 준수하겠다고 선언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청문회의 실효성을 높일 장치도 필요하다. 거짓이나 위증이 있을 경우 처벌하고 정당한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후보자 등을 고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되거나 부적격 결과가 나오면 대통령이 존중하는 문화도 만들어 가야 한다. 청와대가 눈높이를 높여 후보자 사전 검증을 한층 강화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사설] 요식행위 인사청문회, 이대로 놔둘 건가
입력 2020-07-27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