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신문에 실린 소식들이 닿지 않는 방 또는 그런 시간이나 그런 날이 당신에게 있어야 한다.’ 신화종교학자 조지프 캠벨의 말이다. 미국의 교육운동가 파커 J 파머가 저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도 인용했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곳으로 휴가를 떠나는 것처럼 정보의 홍수 속에 허우적대는 뉴스 소비자들에게 건네는 처방전 같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부터 탈 많은 부동산 대책 논란에, 그 빈틈을 채우고 있는 코로나19와 잡다한 얘기들을 접하면서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살벌해졌나’ 씁쓸해질 때가 많다. 논란이 좀 있다 싶은 기사 댓글 창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다시는 안 볼 사람인 양, 기사를 두고 내편 네편으로 갈라져 날선 언어로 치고받는다. 뉴스를 읽으면서 싸움 구경을 하는 것 같다. 싸움은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SNS로 확전되곤 한다.
싸움판이 벌어지는 뉴스 대부분은 ‘나쁜 뉴스’ 부류다. 스캔들과 부정부패, 사건·사고 같은 주제가 많다. 요즘은 ‘정의’와 ‘공정’을 둘러싼 가치관 논쟁이 부쩍 많아졌다. 교육과 부동산, 일자리 같은 일상과 밀접한 문제들을 정의와 공정의 틀 안에서 어떻게 보는 게 맞느냐는 논쟁과 공방이 치열해졌다. 미디어는 특성상 미담류의 ‘좋은 뉴스’보다는 논란과 쟁점을 더 부각한다. 파머는 “(미디어는)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이 잘 팔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어둠과 빛이 뒤섞인 세계에 대해 불균형한 그림을 갖게 된다”고 지적한다.
불균형한 그림을 갖게 되면 ‘삐딱한’ 눈으로 세상을 본다. 예전에는 보는 것으로 그쳤지만, 지금은 다르다. 저마다 가진 SNS 아이디로, 때로는 익명으로 생각과 주장을 스스럼없이 쏟아낼 수 있다. 문제는 사실이 왜곡된 채 또는 사실과 의견의 구분 없이 만들어진 주장과 이야기까지도 함께 유통된다는 점이다. 왜곡된 인식이 꽁꽁 뭉쳐 세력화하면 개인과 사회의 건강성을 해친다. 배려, 경청, 신뢰 같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치들은 설 곳을 잃는다. 2020년 한국 사회에선 이런 가치들이 얼마나 존중받고 있을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한 공개 석상에서 “나만 고결하다, 나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나만이 정치적으로 항상 깨어 있다는 생각을 빨리 극복해야 한다”며 ‘콜아웃 컬처(Call-out Culture)’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콜아웃 컬처는 문제 있는 행동을 한 인물을 온라인 등에서 공개 망신을 주거나 왕따시키는 문화를 말한다. 한국 사회 주요 영역에서도 특정 사건에 연루되거나 부각된 인물을 향해 퍼붓는 집단 공격과 편가르기, 정치적 공방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대부분 ‘내가 옳고, 너는 틀리다’는 편협한 인식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파머는 민주주의 시민들에게 필요한 ‘마음의 습관’으로 2가지를 제시했다. 뻔뻔스러움과 겸손함이다. 마음의 습관은 ‘민주주의의 인프라를 구성하는 가치’ 정도로 풀이된다. 그가 제시한 뻔뻔스러움은 자신의 의견을 (뻔뻔할 정도로) 당당하고 자신 있게 표출할 수 있는 권리다. 겸손함은 내가 아는 진리는 언제나 부분적이고, 전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수용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인들에게 건넨 조언인데, 한국에 적용해도 무방한 메시지 같다.
한국 민주주의에서 뻔뻔스러움의 습관은 잘 갖춰진 것 같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나머지 습관도 잘 들이는 것 아닐까. 국정과 사회 전반에 오만과 편견, 반목과 대립이 가득하다. 이 책을 읽었다는 문재인 대통령도 되새기면 좋겠다.
박재찬 경제부 차장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