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한국외교,인문학적 접근 중요

입력 2020-07-27 00:04

전 세계가 여전히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미·중 양국의 갈등은 계속 증폭되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주도해 왔던 자유주의 국제질서마저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가 이익을 위한 비자유주의적 헤게모니(Illiberal Hegemony)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의해 촉발되면서 이제 세계 각국은 자의든 타의든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국가는 예외 없이 안전 확보와 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목표로 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 두 가지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냉전 유산인 분단의 현실과 실질적 핵보유국 북한의 존재, 그리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외교적 독자성을 갖기 어렵게 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한국 외교의 영역을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라는 소위 ‘한반도 주변 4강’ 국가들과의 관계에 집중시켰다. 이 과정에서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이나 통일 문제와 안보 문제가 분리돼 있다는 통안분리(統安分離)라는 기형적 구조가 형성됐고 이는 한국 외교의 독자적 영역을 여전히 제약하고 있다.

한국은 1988년 이러한 구조의 핵심에 있는 북한과의 소통을 촉진해 한반도의 안정적 평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중국, 소련, 동유럽 국가 등과 교류를 강화해 북한이 국제사회의 정상적 일원으로 기능하도록 북방정책을 시작했다. 서독이 미국과 소련의 긴장 완화를 배경으로 추진한 동독 및 사회주의권에 대한 ‘동방정책(Ostpolitik)’의 논리적 구조와 유사하다. 당연히 남북통일 실현에 궁극적 목표를 두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동서독은 통일을 달성했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의 후유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물론 역대 한국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4강 외교에서 벗어나 외교를 다변화하면서 한반도 안정과 통일 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 왔다. 특히 현 정부는 ‘통일’에 대한 방점보다는 ‘공동 번영과 안정’에 초점을 맞춘 한반도 신경제 지도 구상 및 경제 통일 구현, 동북아 플러스 책임 공동체 형성이란 목표를 설정하고 ‘신북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과의 적극적 소통, 교류에 힘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지난 3년여에 걸친 한국의 선의는 북한이 외면한 것은 물론 미·중 사이에서의 운신도 만만치 않다.

현재 한국의 외교 다변화는 신남방 정책과 신북방 정책을 두 축으로 한다. 이 정책을 통해 분단체제의 경계를 넘어 중국 동북3성과 몽골, 러시아 연해주를 지나 극동 시베리아, 유라시아로 나아가고 한편으로 바다를 건너 아세안, 인도로 새로운 협력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한국 외교의 시대적 요구이며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기도 하다. 정부가 2020년을 ‘신북방 협력의 해’로 선포했지만 여전히 북한 장벽을 돌파하지 못하는 등 주변 상황이 녹록지 않다.

북한과의 소통에 매몰되기보다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우회적 접근을 시도하는 전략적 사유가 필요하다. 노무현정부의 ‘동북아 운영자론’, 박근혜정부의 ‘통일 대박론’ 등과 같이 결과만 강조하면서 자칫 신북방 정책도 우리의 꿈과 희망을 위해 다른 나라들이 애써달라는 주문형 메시지가 되면 곤란하다. 외교의 결과는 안보 정치 경제 사회 등 분야에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상대의 문화 정서 역사 등 인문 가치를 바탕으로 신뢰에 기반한 파트너십을 구축하지 못하면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과 러시아의 동방정책이 간과한 문화적 소통과 접점 확보가 한국 외교 다변화의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HK+국가전략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