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말실수의 해

입력 2020-07-27 04:01

잠들기 전 말실수가 떠올라 종종 이불을 걷어차곤 한다. 부끄러움의 몸부림이다. 갓 입사한 사회부 시절 선배들은 수수께끼를 많이 냈다. 가령 이런 거였다. “구속영장은 신청인가, 청구인가?” 우물쭈물하면 “경찰이 하면 신청, 검사가 하면 청구”라는 가르침이 돌아왔다. 헌법에 명시된 검찰의 영장청구권을 초등학교 첫 등교를 앞둔 아이 수준으로 단순화한 설명이었다. 물론 암기에 취약한 터라 충격요법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 피고와 피고인, 결정문과 판결문의 차이를 틀려 낮에 얼굴을 붉히고 밤에는 이불을 차면서 낯선 용어들은 하나둘 입에 붙기 시작했다.

말실수를 꼭 몰라서 한 것만은 아니었다. 2년 전 참석한 경제부처 브리핑에서 질문을 한답시고 손을 들었다. 2주택 이상 보유자의 사례를 물으려고 했는데, 당시 이를 굳이 ‘삼(三)주택자’라고 표현하고 싶었던 거 같다. 그리고 입에서 나온 소리는 ‘세주택자’였다. “새(新)주택이 아니라 삼주택자를 말하신 거죠?” 뜻만 통하면 삼주택이든 세주택이든 대수냐는 분들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이불을 차곤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화를 구구절절 적은 건 고관대작들과의 공통점을 찾고 싶어서다. 특히 올해는 국민 대다수가 알 만한 말실수가 유독 많아 두고두고 회자될 ‘말실수의 해’라 부를 만하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6일 밤 MBC 100분 토론에 나와 정부의 부동산 대책으로 인해 집값이 떨어질 거라는 주장을 폈다. 그리고 토론이 끝난 뒤 마이크가 켜진 걸 모른 채 “그렇게 해도 안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새어나온 진심에 여론은 발칵 뒤집어졌다. 환담 중에 나온 말이라지만 불과 몇 분 전까지 본인이 설파하던 주장과 모순되는 데다, 속내를 원치 않게 만천하에 드러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말실수에 가깝다.

이에 비견할 말실수도 공교롭게 부동산 분야에서 나왔었다. 지난해 12월 청와대 다주택 참모진에게 집을 팔라고 권고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별 반응이 없자 솔선수범하겠다며 지난 2일 대변인을 통해 “서울 반포 아파트를 팔겠다”고 발표했다. 45분 후 반포가 아니라 청주 아파트라고 말을 고쳤다. 청와대는 “노 실장이 말을 바꾼 게 아니라 전달 과정에서 실수했다”고 해명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노 실장은 결국 두 집 다 팔겠다고 했다. 네티즌들은 청주 집을 먼저 팔아 2주택 양도세 중과를 피한 노 실장에게 ‘절세왕’ ‘반포영민’ 등 다양한 별명을 붙여줬다. 한국 나이 64세인 노 실장이 요즘 예능 트렌드라는 ‘부캐’(본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라는 은어)를 여럿 갖게 된 건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실수에 엄격한 문화라서만은 아닐 것이다.

머리 아픈 건 실언(失言)에도 당당한 경우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4일 세종시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에서 서울을 두고 “이런 천박한 도시를 만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당 공보국의 입을 빌려 “서울이 재산 가치로만 평가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대표는 석 달 전 부산에 가서도 “도시(부산)가 왜 이렇게 초라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었다. 부산을 위한답시고 한 말이었다는데 논란만 들끓었다. 이쯤 되면 그가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좀 약하대요’ ‘XX자식 같으니라고’류의 발언을 줄줄이 쏟아내는 까닭을 알 것도 같다.

말실수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겪는 일이다.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감추고 싶은 속마음이 무의식 중에 튀어나오는 게 말실수(Freudian slip)라고 했다. 평소 할말 안 할 말 가리던 사람도 실언하는 이유다. 무의식에 했든 일부러 했든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 잦은 구설로 골치가 아프다면 자신의 언어 습관을 돌이켜봐야 한다. 속는 셈치고 ‘자기 전 이불 차기’ 연습이라도 해보시라. 실언 치료는 부끄러움을 아는 게 첫걸음이다. 듣는 귀가 이상하다며 남 탓 해봤자 구차해질 뿐이다.

양민철 경제부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