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모았던 항공업계 인수전(戰)이 7개월여 만에 소송전으로 전락했다. 제주항공이 23일 인수·합병(M&A) 계약 파기를 통보하자 이스타항공은 ‘계약을 위반한 제주항공은 해지할 권한이 없다’고 반박했다. 향후 제주항공이 선지급한 이행보증금 115억원 반환 여부와 이스타항공의 미지급금 1700억원 책임소재를 놓고 치열한 법적 다툼이 예상된다. 이스타항공 직원 1600여명은 대량 실직 위기에 놓였다.
제주항공은 이날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 노력에도 짊어져야 할 불확실성이 너무 커 이스타항공과의 M&A 계약을 해제한다”고 공시했다. 제주항공은 계약 파기 책임이 체불임금, 리스료 등 미지급금을 해소하지 못한 이스타항공에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2일 제주항공은 “이달 15일까지 미지급금 1700억원을 해소하지 못하면 선결 요건을 이행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고 통보한 바 있다.
이스타항공은 즉각 반발해 소송 준비에 돌입했다. 이스타항공은 “계약서상 ‘미지급금 해소’는 선결 요건이 아닌데 제주항공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계약 불이행 시 모든 책임은 제주항공에 있다”고 밝혔다. 제주항공이 계약 해지 권한이 없다는 걸 소송을 통해 확인하고 인수를 완료시키겠다는 것이다.
향후 양사 간 진행될 법정 공방의 쟁점은 ‘계약상 미지급금이 선결 요건인지’와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의 셧다운을 지시했는지’ 등 크게 두 가지다. 이스타항공은 지난 3월 제주항공이 전 노선 운항 중지를 지시했고 이후 경영 부실이 악화됐다고 강조한다. 셧다운 이후 발생한 미지급금과 경영 악화의 책임이 제주항공에 있다는 주장이다. 앞서 조종사노조는 당시 제주항공 대표였던 이석주 전 사장이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에게 셧다운 계획을 말하는 내용의 통화 녹음 파일을 공개하기도 했다.
반면 제주항공은 ‘셧다운 결정 주체는 이스타항공이었으며 제주항공은 조언한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주항공은 계약 파기 책임이 이스타항공에 있다는 점을 물어 이미 낸 이행보증금 115억원 중 일부라도 반환받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잠식 상태인 이스타항공은 승소만이 살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쌓인 부채가 너무 많아 법정관리에 들어가도 회생 가능성은 낮다”며 “제3의 인수자가 나올 가능성도 거의 없어 소송에서 이기지 않는 한 파산은 막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스타항공은 다음 달부터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휴직을 실시하는 등 고정비를 줄여 소송 기간을 최대한 버티겠다는 방침이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파산하면 직원 1600명이 거리에 나앉게 되니 최대한 버티겠다”며 “지역, 정부 등으로부터 유동성을 지원받아 국내선을 재운항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스타항공이 내놓을 ‘플랜B’(차후 계획)를 보고 지원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상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이스타항공이 폐업 전 단계에서 자구 노력을 한다면 정부도 제3의 인수자를 찾는 등 지원할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스타항공이 파산하면 정부가 손쓸 방법은 사실상 없다.
안규영 기자, 세종=전성필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