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을 이것만 생각하며 뛰었는데…너무 허무했어요.”
오후 훈련이 있던 일상적인 월요일이었다. 상주 상무 고등부 공격수 이지훈(18)은 휴대전화에서 뉴스를 봤던 한달 전의 오전을 기억하고 있다. 포털 뉴스란에는 상주시장의 발표문이 떠 있었다. 내년 창단될 예정이던 상주 연고 프로축구단 계획을 백지화한다고 했다. 반년만 더 노력하면 프로팀에서 뛸 수 있다는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경기력에 영향을 줄까봐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괴로운 현실은 외면할 수 없다.
미드필더 김동진·한재혁(17)은 5년째 발을 맞춘 콤비다. 발재간 좋은 김동진이 패스를 찌르고 상대를 제치는 데 능하다면 한재혁은 공을 뺏고 김동진을 보호하는 역할에 능숙하다. 장난기 많은 김동진과 과묵한 한재혁은 잔디 밖에서도 단짝이다. 그러나 둘의 협력 플레이도 이대로면 올해가 마지막이다. 함께 프로팀 선수복을 입고 싶은 꿈은 고사하고 당장 축구를 계속할지도 장담이 어렵다. “올해가 마지막일 수 있다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그래서 고민이 많아요”라고 한재혁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경북 상주 연고 프로시민축구단 창단이 백지화된 지 약 한달여가 지났다. 10년 간의 약속을 뒤엎은 결정으로 100여명의 구단 유소년들이 갈 곳을 잃었지만 여태 아무 대책도, 책임지는 이도 없다. 지자체와 교육계, 심지어 축구계도 이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 구단 해체 결정 이후 23일까지 상황은 개선된 게 없었다. 상주시에 문제 해결을 요구하던 상주 구단 신봉철 대표이사 등 5명이 이날 사퇴한 게 변화의 전부였다.
앞서 강영석 상주시장은 지난달 22일 기자회견을 열어 “상주상무프로축구단은 올해 말을 기점으로 막을 내린다”고 발표했다. 10년 전 상주시가 상무를 유치하며 걸었던 시민구단 전환 약속은 휴지조각이 됐다. 강 시장은 유소년들이 입을 피해를 언급했으나 어떻게 대처할지는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책임을 한국프로축구연맹과 국군체육부대, 상주 구단에게 돌렸다. 그는 시장이 되기 전까지 경북도의회의 교육위원장이었다.
구단 산하 유소년 팀은 해체를 눈앞에 뒀다. 군인 신분인 상무 선수들은 뛰는 곳만 신규 이전지인 김천으로 바뀌지만, 유소년 팀 아이들은 갈 데가 없다. 한 구단 관계자는 “축구계 지자체 교육계 모두 아이들을 돕지 않는다. 버려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상무의 골잡이 출신인 김명중 코치는 “어른들도 직장을 잃지만 문제 삼고 싶진 않다. 하지만 아이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잖은가”라고 되물었다.
내년 졸업하는 고3 아이들은 원래라면 새로 생길 상주 시민구단에서 뛸 가능성이 컸다. 신생 구단의 경우 선수수급에 비용·시간이 들기에 자체 유소년 출신을 쓸 여지가 많아서였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 모두 미래를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 올해 실업리그가 K3·K4에 통합되면서 다른 선택지도 더 좁아졌다. K리그1·2에서 검증된 프로 출신 선수들이 내려오는 효과가 생겨 곧장 프로에 가지 못한 어린 선수들이 뛸 기회가 줄기 때문이다.
고2 학생들은 팀이 해체되면 주전이 확고한 다른 유소년팀에서 새로 자리 잡아야 한다. 출전조차 불확실한 상황에 남은 1년 중 프로팀 눈에 드는 건 대표팀급 기량이 아니면 언감생심이다. 이적해도 협회 규정 탓에 이전 소속팀 해체 전까지는 전 경기일 기준 3~6개월간 뛸 수 없다. 초등부는 특성상 축구를 계속하려면 가족 전체가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 초등부 주장 김지환(12)은 “계속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싶다. 이렇게 끝내기는 아쉽고 슬프다”면서 “다시 팀을 만들어줄 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그나마 대안은 새로 상무를 유치할 김천시가 상주 유소년들을 흡수하는 경우다. 그러나 애초 연맹과의 계약에 첫해 고등부 창단은 의무가 아닐뿐더러, 기존 김천 지역 유소년 클럽이 새로 창단될 구단 유소년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김천시 관계자는 “상주시 측에서 유소년 인수 제안을 해오지 않았다. 지자체끼리만 얘기할 게 아니라 김천과 상주, 교육청, 국군체육부대까지 최소 4개 주체가 논의해야 하는 사안”이라면서 “안이 마련되더라도 구단 이사회가 생기는 11월이 되어야 심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