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곡 김태정 교수께 예술이론을 수업받던 무렵, 같이 수업을 듣던 수강생의 추천으로 누드크로키 수업을 듣게 됐다. 오주남 선생과 다른 한 명의 수강생과 같이 서양화가 김영자 선생의 누드크로키 수업을 들었다.
처음 누드크로키 수업을 듣던 날은 기억이 생생하다. 찰나에 사람의 몸이 새로운 형상으로 꿈틀거리는 정말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모델의 움직임과 표정에 따라 만물이 표현되는 걸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막상 누드크로키를 배우러 간 자리에서 오 선생과 다른 수강생은 누드모델을 도저히 쳐다볼 수 없어 그림을 그리지 못하겠다고 했다. 결국, 나 혼자 다니게 됐다.
문제는 수강생과 선생님이 모두 여자란 점이었다. 혼자 힘으로 화장실을 가야 하는 등 여러 문제가 있었다. 주저하다가 김 선생께 사정을 얘기했더니 자기가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다니라고 하셨다.
크로키는 펜으로 밑그림을 스케치하듯 짧은 시간 안에 특징을 잡아 그려내야 한다. 의수에 붓 대신 연필을 끼웠다. 끝없는 연습의 시간이 시작됐다. 수업 시간엔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는 작업대는 사용하기 어려웠기에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다. 누드크로키는 모델이 한 자세를 끝내고 다음 자세를 취할 때까지 그림을 그려야 한다. 하지만 혼자서 갈고리 의수와 발을 이용해 스케치북을 넘기며 그림을 그리려야 했던 난 절반도 그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누드모델이 자세를 취하는 시간이 3분이었는데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다.
힘겹게 그림을 그리던 내 모습을 본 김 선생은 모델이 자세를 바꿀 때마다 손수 스케치북을 넘겨주곤 하셨다.
하루는 김 선생이 집에서 스케치북 넘기는 것을 연구해봤다며 스케치북 아래 귀퉁이 끝을 갈고리로 넘길 수 있게 계속 접어 주셨다. 그 덕분에 모델의 자세가 바뀌어도 대충 따라 그릴 수 있었다. 그렇게 난 김 선생과 다른 수강생들의 배려로 누드크로키에 매진할 수 있었다.
연필과 목탄으로 그리는 서양화 크로키에 익숙해지자 내 특기인 붓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붓 특유의 한 획씩 그리는 기법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6년을 매달렸다.
그 무렵 난 종종 낚시하는 꿈을 꿨다. 당시엔 그저 낚시가 그리워 꾸는 꿈이겠거니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꿈의 종류가 달라졌다. 모든 꿈에서 내 두 팔은 멀쩡했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갈망이 꿈을 통해 요동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부터 거짓말처럼 그 꿈들이 사라졌다. 연필로만 해 오던 누드크로키 작품을 화선지에 옮겨 붓으로 그리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사고 후 10여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내가 양팔과 헤어진 것이 운명이라면 의수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숙명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난 늘 말한다. 하나님이 건강한 두 팔을 다시 준대도 안 받겠다고.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