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를 보면서 아전인수(我田引水) 견강부회(牽强附會) 양두구육(羊頭狗肉) 후안무치(厚顔無恥) 인면수심(人面獸心) 어부지리(漁夫之利) 식언이비(食言而肥) 등의 한자 성어들이 떠올랐다. 한자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교수신문이 뽑은 사자성어는 공명지조(共命之鳥)였다. 최재목 영남대 교수는 추천 이유를 “현재 상황(2019년)은 마치 공명조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서로를 이기려고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쪽이 사라지면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한국 사회가 안타까워 선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해가 바뀌었는데 달라진 게 없다.
예전에도 ‘공자 왈, 맹자 왈’ 하면 ‘꼰대’였지만, 공자 맹자의 생각 근저에는 삶의 기본이 있다. 공자는 인(仁), 사람다움을 강조하면서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을 대비했다. 간추리면 소인은 이익에 밝다, 조바심을 낸다, 모든 일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다, 잘못이 있으면 덮어 숨기려 한다,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고 나쁜 점을 찾아낸다,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안달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날 때부터 군자인 사람은 없을 터, 사람다우려고 노력해 가는 거다. 예전 ‘어른’들은 그래서 ‘꼰대’를 자처했나 보다.
맹자는 사람의 네 가지 조건으로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을 꼽았다. 측은지심은 어짊, 수오지심은 옳음, 사양지심은 예절, 시비지심은 지혜의 극치라고 했다. ‘인·의·예·지’를 닦으면 대장부가 될 수 있다. 대장부 조건은 다섯 가지다. 부동심(不動心) 선의후리(先義後利) 호연지기(浩然之氣) 여민동락(與民同樂) 불인지심(不忍之心). 대장부가 돼야 할 세태 속 사람들은 대부분 ‘먹물’들이다. 다들 성적 좋았고 ‘가방끈’ 길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너무 지나쳐 모자라 보인다. 군자 대장부가 되려는 노력은 하는지, 해도 연기 같다.
마침 친구가 SNS에 시 하나를 소개했다. 문정희 시인의 시집 ‘다산의 처녀’에 있는 ‘문어’다. “문어(文魚)가 꽤 지적(知的)인 이름을 가진 것은/ 머릿속에 들어 있는 먹물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가 먹물을 찍어 글을 쓰는 것을 누구도 본 적은 없다/ (중략)/ 긴급 상황에는 유감없이 먹물을 뿜어 사태를 흐려 놓고/ 다리를 통째 자르고 사라질 때도 있다/ (중략)/ 어떤 시집을 펼치면 덜 말라 쭈뼛한 그의 대가리가/ 고약 같은 먹물을 달고 튀어나와/ 섬뜩 뒤로 물러설 때가 있다.”
1988년 미국에서 초판 발행 이후 서점가를 휩쓴 책이 있다. 당시 전 세계 20여개국에서 700만부가, 우리나라에선 1989년 번역 출간돼 120만부 넘게 팔렸다. 로버트 풀검 목사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다. 한 블로거가 친절하게 내용을 정리해놨다. “무엇이든 나눠 가져라, 공정하게 행동하라, 남을 때리지 말아라, 자신이 어지럽힌 것은 자신이 치워라, 내 것이 아니면 가져가지 말아라, 다른 사람을 아프게 했으면 미안하다고 말하라….” 물론 유치원에서 배운 것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아니다. 저자는 “그때 기본을 체득하지 못했다면, 자신과 사회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경고한다.
이런 내용도 있다. “여기에는 무섭고도 놀라운 진리가 작용한다. 세상 모든 것은 어떤 것이 자리를 내주고 사라질 때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 없이는 삶도 없다. 예외는 없다. 모든 것은 왔으면 가야 한다. 사람도, 세월도, 생각도, 모든 것이 그렇다. 옛것은 새것을 위한 거름으로 자신을 내주고 사라진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이다.
전재우 사회2부 부장 jw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