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활동을 하며 SNS로 독자들과 소통할 일이 많다. 댓글로 다양한 질문을 받고 있는데 최대한 소상히 답변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궁금증을 못 참는 성격인지라 타인의 호기심이 더 갈급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많이들 궁금해하는 것은 일상적인 면면들이다. 주로 작업하시는 카페는 어디인가요, 언급하신 공연은 어디에서 보셨나요, 사진 속 빈티지 재킷은 어디에서 사셨나요 등등. 나는 그 섬세한 관심들에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다음과 같이 답변해오곤 했다.
가로수길이에요, 대학로입니다, 광장시장이요. 때로는 더 친절히 설명한답시고 ‘1호선을 타고 가시면 됩니다’ 같은 말을 덧붙이기도 한다. 당신은 이 답변들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어떤 이는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물음표를 띄웠을 것이다. 나는 전자의 사람이었다가 언젠가부터 후자에 속하게 됐다. 이 답변들의 묘하게 거슬리는 지점은 다음과 같다. 나는 특정 지명을 자연스럽게 언급하고 있지만 질문자를 당연하게도 서울 거주인으로 상정하고 있다. 혹은 서울에 대한 정보는 모두가 공유하는 상식 레벨이라 이 정도만 설명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심지어 가로수가 있는 길이나 대학 앞의 거리는 도시마다 있는데도 말이다.
물론 실제로 많은 사람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고 각종 미디어에서도 서울의 곳곳을 집요하게 비춰준다. 모든 이슈의 주인공은 늘 서울이다. 설령 질문을 던진 이가 서울시민이 아니더라도 대략적인 정보 전달은 됐을지도 모른다. 이런 가정도 할 수 있다. 질문자가 내가 서울에 거주 중인 사실을 알고 물어본 것이기에 ‘서울 어디겠거니’ 하는 인식이 사전에 공유됐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 내가 주목한 것은 답변하는 ‘나’의 인식이었다. 모두가 서울에 사는 것도, 서울 지리에 능통한 것도, 지역별 분위기를 아는 것도 아닌데 너무도 당연하게 그것들이 공유되고 있다고 가정한 것이다. 조금의 의심도 없이.
과연 그럴까. 서울의 인구는 현재 973만명이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가 5000만명을 넘겼으므로 어림잡아도 5명 가운데 4명은 서울시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즉 내가 올린 게시물에 댓글을 다는 사람 중 80%는 서울에 살지 않는다. 수도권 인구가 2500만명을 넘겼다는 소식도 들었다. 상당한 숫자지만 이 역시 뒤집어 말하면 한국인의 절반은 서울 지근거리에 살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데 나는 왜 막연히 나와 소통하는 사람이 무조건 서울 문화권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문득 거기에 물음표가 찍히자 흔하게 쓰이는 표현이나 뉴스를 다루는 방식도 달리 보였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방송에도 흔히 나오는 ‘여기 분위기 꼭 ○○동 같다’는 표현. ○○동은 물론 서울의 특정 동네다. 대한민국 사람이 모두 그 동네를 가봤을 리는 없음에도 이런 문구는 흔하게 쓰인다. 이런 경우도 있다. 특정 브랜드가 인기를 끌었다는 기사에 ‘브랜드 ○○○ 한국인의 마음 훔쳐’ 같은 표현이 붙는다. 그 브랜드는 수도권에만 매장이 있는데 말이다. 더더욱 심각해지는 건 이런 상황이다. 전 국민을 긴장하게 한 대형 태풍이 몰아쳤는데 서울만은 피해가 적었다. 이런 경우 ‘○○호 태풍 뜻밖에 조용히 지나가’ 같은 뉘앙스로 보도되곤 한다. 다른 지역에 아무리 큰 재산 피해나 인명사고가 나도 마치 언제 태풍이 왔냐는 듯이 말이다.
이런 표현들은 온당하지 않다. 서울은 큰 도시고 중요한 지역이지만 그렇다고 이 나라를 ‘서울과 기타 등등’으로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 한국이 도시국가도 아닌데 ‘서울공화국’이라는 딱지도 유쾌하지 않다.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를 보면 특정 도시의 재앙을 전 세계의 위기인 양 호들갑 떠는 모습을 자주 본다. 거기에서 1만㎞ 떨어진 곳에 사는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다. 세상 모두가 그 도시에 살지는 않는데 말이다.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세상 모두가 서울에 살진 않는다. 이 당연한 사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홍인혜 시인·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