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인 전직 비서 A씨의 피해 사실 호소에 대해 “일상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거나 “주장만 하지 말고 증거를 대라”며 피해자를 비난하는 듯한 반응이 인터넷에 넘쳐나고 있다. 이처럼 성추행 피해를 일반화하거나 피해자를 압박하는 것도 일종의 2차 가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의사는 지난 17일 페이스북에 “시장이 운동 후 속옷을 비서가 가져다줘야 하는 게 과연 ‘기쁨조’ 소리를 들을 정도의 일이었느냐”면서 “간호사들이 자신의 잠을 깨우는 등 신체접촉도 많았지만 아직 성추행으로 고소당해본 적 없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김두일 차이나랩 대표는 지난 18일 페이스북에 “법조인이 아닌 내 판단으로는 성추행의 중요한 판단 기준에 해당하는 신체적 접촉이 있었던 부분은 약을 바르는 과정에서 ‘무릎에 입김이 닿았다’는 것이 전부인데 그것을 강제 추행의 근거로 삼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트위터 등 각종 SNS에서도 피해자가 밝힌 피해 사실에 대해 “‘속옷 심부름’ ‘잠 깨우기’ ‘맥박’ 등 언급은 성추행의 결정적 증거가 아니다”는 등의 글도 발견된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속옷 갖다놓기 등 비서로서 겪은 시시콜콜한 내용을 대단한 성범죄인 양 공개하는 것은 피해 여성 보호가 아니라 고인을 짓밟기 위한 정치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피해자가 겪은 성추행 피해를 일반화하고 축소하려는 시각에 대해 권위주의적 선입견이 내재돼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피해 사실이 ‘조직생활 내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부정하거나 축소하는 것도 전형적인 2차 가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연구위원도 “지금까지의 잘못된 노동 관행이 이들에게 상식으로 통했다면 상식이라는 것이 기득권 남성에게 얼마나 호의적인 방식으로 작동했는지를 성찰해야 한다”며 “여러 정황이 있는데도 성추행 사실을 사소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논리 때문에 성추행 피해 사실을 축소하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일반적인 성희롱·성추행 사건과 달리 이번 사건은 정치 이슈화되면서 성추행 피해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피해자에게 연대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진영논리’로 공격한다면 앞으로 어떤 피해자가 성추행 피해를 당하고도 신고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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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