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부동산 시장을 뒤흔든 정부의 세법 개정안이 한발 물러났다. 2000만원을 초과하는 금융소득에 과세하려던 금융소득세제 개편안은 발표한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수정안이 나왔다. 하한선을 5000만원까지 높여 과세 대상을 대폭 줄였다. ‘7·10 부동산 대책’에 담겼던 양도소득세 중과세 대상도 조정했다. 분양권도 1주택으로 본다는 당초 입장에서 물러나 개정 소득세법이 시행되는 시점 이후 취득한 분양권부터 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들끓는 민심을 고려했다고는 하지만 개정된 내용만 보면 안 하느니만 못한 개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소득세제 개편안의 경우 면세 대상이 확대되면서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되레 증권거래세 인하로 늘어나는 복지 예산을 충당할 세수만 줄어들게 됐다. 양도소득세 중과 대상 조정은 정작 필요한 부동산 가격 인하 효과도 없이 혼돈만 낳았다. 이 과정에서 서민이 아닌 부자 수혜자만 늘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단 정부가 22일 발표한 ‘2020년 세법 개정안’에 담긴 금융세제 개편안을 보면 당초 발표와는 달리 기형적 구조가 엿보인다. 2023년 전면 도입하는 금융투자소득세의 기본공제액이 2.5배 상향됐다. 상향된 5000만원이란 기준점을 넘으려면 수익률이 10%나 된다고 해도 5억원 이상의 주식과 관련한 금융자산이 있어야 한다. 원천징수 시기도 월별 계산에서 반기별로 조정했다. 반기 기준으로 수익이 5000만원을 넘지 못했다면 세금을 안 낸다. 그러다보니 증가 세수 추정치는 당초보다 4000억원 정도 줄어들었다.
반면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대신 당근책으로 제시한 증권거래세 단계적 인하 시기는 2022년에서 내년으로 1년 앞당겨졌다. 시기 조정으로 감소하는 세수는 기존 계산(1조9000억원)보다 5000억원 늘었다. 조정된 내용을 반영하면 향후 5년간 세수는 기존 발표보다 9000억원 줄어든다. 문재인 대통령의 “주식시장을 위축시키거나 개인투자자 의욕을 꺾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는 지적이 1조원 가까운 세수 감소 효과를 낸 셈이다.
분양권을 둘러싼 논란도 갑작스럽게 조정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당정협의를 통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주택 수에 따라 양도세율 10~20% 포인트 인상) 대상에서 기존 분양권 보유자를 배제했다.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때 고려하지 못했던 ‘실수’를 무마하기 위한 조치로 읽힌다.
문제는 이러한 급작스러운 조정이 특정 세력에 유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증권거래세 인하 시기 조정은 개인투자자뿐만 아니라 금융회사와 같은 기관투자가 및 외국인투자자의 이익 증대 효과도 불러온다. 서민에게 써야 할 세수를 줄여 기관투자가·외국인 이익을 늘린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분양권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1주택자 중 분양권을 지닌 이들은 원상복귀 효과에 그치지만 분양권을 다수 보유한 다주택자는 해당 조치로 수혜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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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신준섭 전슬기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