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합의로 이전?… 법학자들 “개헌 필요” vs “입법으로 충분”

입력 2020-07-23 04:04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는 전날 회의에서 “여야가 합의해 행정중심복합도시법을 개정하는 입법 차원의 결단으로 행정수도 완성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왼쪽은 이해찬 대표. 최종학 선임기자

여당이 16년 만에 행정수도 이전론을 다시 꺼내들면서 실현 가능성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여야 합의만 있다면 국회가 ‘천도’를 주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여야 합의만으로는 어렵고 개헌이나 국민투표, 헌법재판소의 판례 변경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입법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수도 이전 문제가 헌법에 관한 사항이라는 것을 명시한 헌법재판소 결정(2004년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이다. 수도가 서울이라는 국민적 합의, 즉 관습헌법이 있다고 헌재가 판단했기 때문에 수도에 관한 규정을 넣는 개헌을 해서 위헌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다.

개헌이 어렵다면 헌재가 위헌 결정의 법리로 내세운 관습헌법을 깨야 한다. 수도는 곧 서울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아직 유효한지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법이다. 국민투표를 통해 ‘수도=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면 수도 이전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2일 “논란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개헌이 아니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수도 이전은 중요한 국정 사안으로서 대통령이 직권으로 국민투표에 부치면 된다”고 말했다.

헌재 판단을 다시 받는 것도 가능한 수단으로 꼽힌다. 헌재가 2004년 위헌 결정을 뒤집고 합헌 결정을 내린다면 수도 이전을 추진할 수 있다. 현재 헌법재판관 구성은 9명 중 6명이 진보 성향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따라서 이번 사안이 심판대에 오를 경우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영훈 국회 미래연구원 연구위원(법학박사)은 “2004년 당시와 재판관 구성이 바뀌어 승산이 있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결정을 뒤집으려면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이 없어졌다는 것을 설득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야 합의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개헌이나 국민투표, 헌재의 판례 변경 유도를 통해 수도 이전을 할 수 있다”며 “2004년에도 여야 합의로 법안이 만들어졌지만 헌재 결정 때문에 이전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수도 이전 문제는 국가정책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권형둔 공주대 법학과 교수는 “2004년 헌재 결정은 잘못됐다고 본다”며 “국가정책은 입법자에게 광범위한 재량권이 인정된다. 당시 여야가 합의했고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는데 헌재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김주환 홍익대 법학과 교수도 “독일의 경우 수도를 본에서 베를린으로 이전할 당시 개헌하지 않고 의회에서 처리했다”며 “수도 이전 문제는 헌법적 효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법률적 효력을 갖는다고 보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헌재의 관습헌법 논리에 부실한 측면이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정태호 교수는 “당시에도 학계에서 논란이 많았다”며 “헌재 스스로 관습헌법 법리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하지 못한 상태였거나 일종의 정치적 판결을 내렸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권형둔 교수는 “관습헌법에 대해 잘 몰랐든지 의도적으로 법리를 잘못 인용한 사례”라고 했고, 정영훈 연구위원도 “관습헌법을 끌어들여 궁색한 논리를 개발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가현 박재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