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교회에 관한 나름의 판단을 갖고 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시 만나는 교회’(복있는사람)를 최근 펴낸 성서신학자 박영호(55) 포항제일교회 목사가 한 이야기다. 박 목사의 말대로 우리나라 사람치고 선입견 없이 교회를 바라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내용이 좋든 나쁘든 교회 관련 소식은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초대교회 연구로 2012년 미국 시카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성경에서 캐낸 교회의 본질을 대중에게 보여주고자 이 책을 썼다. 책은 뉴스가 아닌 성경의 렌즈로 교회를 바라보며 다시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제목에 ‘다시 만나는’이란 표현이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16일 서울역 도심공항터미널 라운지에서 박 목사를 만났다.
그는 신학과 목회 두 영역을 오간 ‘현장형 신학자’다. 부산대와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 가 2005년 박사과정 중 시카고대 인근에 약속의교회를 개척했다. 교회에 첫발을 디딘 이들을 위한 새가족반 교재를 제작했는데, 이게 책의 밑거름이 됐다. 2015년 한일장신대 신약학 교수로, 2018년 포항제일교회 목사로 부임한 그는 이 내용을 토대로 강의실과 교회 새가족반에서 신학생과 성도를 가르쳤다. 15년간 여러 상황에서 다각도로 책을 검증한 셈이다.
‘교회론으로 배우는 새가족반’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책은 조직신학적 측면에서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교회를 설명한다. 인간의 죄성을 설명하기 위해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를 비유로 든다. 추위를 이겨보려던 고슴도치가 뭉치다 서로의 가시에 찔리듯, 인간도 상대와 가까워지려다 이기적인 죄성 탓에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조건 없이 자신을 완전히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으로 정의한다. 하나님이 먼저 죄인인 인간을 조건 없이 사랑하셨음을 설명하기 위해 영화 ‘노팅힐’의 줄리아 로버츠 대사를 인용한다. “잊지 말아요. 난 그저 한 남자 앞에서 사랑을 구하는 한 여자일 뿐이라는 걸.” 이 영화에서 로버츠가 연기한 유명 여배우는 평범한 남자의 사랑을 갈구한다. 이처럼 만유의 하나님이 먼저 인간을 찾아와 파격적인 사랑을 베풀었음을 받아들이는 게 믿음이다. 믿음은 인간의 의지로 시작되는 게 아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귐’과 ‘선교’란 두 단어로 집약한다. 사귐은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를 맺고 이를 누리는 것’이고, 선교는 ‘주님의 평화를 밖으로 넓혀가는 것’이다. ‘선교적 교회’ 개념을 설명하며 ‘워라밸’ ‘소확행’ 등 최신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에 관한 기독교적 해석을 실은 것도 인상적이다. 최근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이란 신조어에 눈길이 간다고 했다. 그는 “기성세대의 부동산 탐욕이 젊은이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다음세대에 희망을 주는 소식이 더 많이 들렸으면 한다”고 했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에서 출발한 책은 ‘교회는 희망’이란 말로 마무리된다. 박 목사는 “인간 존재 본연의 문제인 갈등, 외로움, 한계 등에 있어 하나님이 답을 가진 게 맞지만, 그 답은 교회를 통해 온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고 했다. 또 “교회를 단순히 제도로 보고 그 중요성을 놓친다면, 하나님이 의도한 풍성한 삶을 거절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현재 한국교회가 실망을 주는 것도 알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교회를 통해 세상에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이 교회를 비판하는 건, 근저에 일말의 희망이 남았다는 방증이지 싶다”며 “교회의 근원적 성격을 밝히는 이 책으로 교회에 희망을 품고,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이들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한국교회가 영적 공동체이자 사회적 실체로서 사회와 조응해야 한다는 조언도 내놨다. 박 목사는 “코로나19 사태 동안 교회는 사회 전체와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체득했다”며 “정부 정책보다 사회 여론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이웃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교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