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승줄에 묶이고 수갑을 찬 채 법정에 서는 경험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군사정권의 마지막을 향해 가던 시절 대학을 다닌 세대에 시위는 일상이었다. 학교에서, 거리에서, 심지어 법정에서도. 일주일에 평균 두세 번 참여할 정도로 많은 시위에 나섰지만 달린(잡힌다는 의미의 은어) 것은 그날이 유일했다. 잡히지 않을 수 없는 장소에서 시위를 했기 때문이다.
1991년 초여름쯤으로 기억된다. 구속된 민주화단체 대표의 공판이 열린 서울 서초동의 한 법정에서 구호를 외치다 즉심에 넘겨졌다. 법정경찰에 연행돼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이니 방청석에 앉아 구호를 외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10여명에 달하는 ‘법정 난동범’ 가운데 무슨 이유인지 첫 번째로 피고인석에 섰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판사는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내용이 기억나는 건 두 가지다. 법정에서 구호를 외치는 게 옳은 일이냐, 그리고 대체 왜 그런 짓을 했냐.
법정에서 구호를 외치는 게 옳은 일이냐는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인정했다. 그러면 왜 그랬냐는 질문이 되돌아왔는데 미리 준비한 답이 없었다. 어설픈 난동범이었던 셈이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고등학교 때 배웠던 ‘3권 분립’이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제대로 3권 분립이 이뤄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식의 얘기를 얼버무렸다.
즐겁지 않은 추억을 다시 떠올린 이유는 한 판사의 구속영장 발부 사유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강요미수 혐의를 받던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일반적인 경우보다 10배가량 많은, 200자가 넘는 발부 사유를 밝혔다. 통상 구속영장 발부 사유로 증거 인멸 혹은 도주 우려 등을 간단히 언급하는 것과는 달랐다.
판사가 혐의 소명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는지는 법 문외한으로서 논할 바가 아니다. 이 전 기자가 구속된 사실 자체에 대해서도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악다구니 다툼에 뛰어들 생각은 없다. 다만 발부 사유 중 “언론과 검찰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대목에선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이 전 기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게 언론과 검찰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었다는 논리라면 언론과 검찰의 신뢰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구속영장을 기각할 수 없었다는 얘기인가.
정파적 이익을 위해 아무 말이나 마구 던지는 정치판 언저리의 꾼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꾼들의 구미에 맞는 수사를 하고, 꾼들의 논리에 맞는 기사를 내놓는 ‘답정너’ 검찰과 언론에 대한 비분강개는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검찰이 검찰의 수사를 믿지 못하고 언론이 언론의 기사를 의심하는 현실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판사가 법리가 아닌, 정치판의 논평처럼 느껴지는 말들을 영장 발부 사유에 늘어놓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최소한 사법부만이라도 서로의 판결을 손가락질하는 꼴사나운 모양새는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 ‘사법농단’은 국민의 가슴에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즉심 재판 후 법정에서 구호를 외쳤던 이들 중 몇 명은 석방됐고 몇 명은 구류를 살았다. 판사가 몇 명을 풀어준 것은 군사정권 반대를 외친 이들에게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몇 명에게 구류를 살도록 한 것 역시 당시 정권에 동조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풀려난 이들과 구류를 산 이들을 가른 것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법정에서 소란을 피운 것에 대해 “잘못했다”고 인정한 이들은 모두 풀려났고, 의연하게 “군사정권의 하수인이 진행하는 재판에 대해 항의했을 뿐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 이들은 구류를 살았다. 풀려난 이들도, 구류를 산 이들도 처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의가 없었다.
정승훈 사회부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