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티아고’ 노두길에서 12제자에게 길을 묻다

입력 2020-07-28 17:20 수정 2020-07-28 17:20

여름휴가 시즌이다. 코로나19로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천하면서 위로와 안식을 받을 만한 특별한 비대면 여행지는 어디가 좋을까? 조용히 명상하면서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멈춘 공간이 있다. 전남 신안군 증도면 앞바다 갯벌에 박힌 보석처럼 작은 섬 ‘기점·소악도 순례자의 길’이 바로 그 곳이다.

바다에 떠 있는 모섬인 증도면 병풍도와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등 섬 5 개를 노두길이 한 섬처럼 이어져 있다. 밀물 때 노두길이 바다에 잠겨 다시 5개의 섬으로 변하는 곳이다. 오래전 섬과 섬 사이 갯벌에 돌을 쌓아 만든 징검다리 길이 노두길이다. 지금은 시멘트 포장이 되어 차량 통행도 가능하지만 물이 빠져야만 다닐 수 있어 ‘기적의 순례길’이라고도 불린다.

베드로의 건강의 집.

“우리 섬은 신안 군에서도 완전 오지입니다. 외부인이 거의 찾지 않고 섬에 살던 젊은이들은 한 번 나가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섬이 무인도가 될 것 같은 위기감에 주민들이 뭉쳤어요. 그래서 열심히 사람이 찾아오는 섬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조범석(67) 기점·소악도 가고 싶은 섬 추진위원장의 설명이다.

이런 주민들의 노력을 평가한 전라남도는 2017년 기점·소악도를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하고 40억 원을 지원 중이다. 신안군 증도면주민 90% 이상이 기독교인이며 한국 성결교 최초의 여성순교자 문준경(1891~1950) 전도사가 섬마을 전도를 위해 찾던 사명의 길이란 것에 착안했다. 신안이 고향인 그는 1년에 고무신이 8켤레나 닳았을 정도로 열정적인 선교를 했다고 한다.

대기점도 초입에 위치한 ‘안드레아의 생각하는 집’ 뒤로 병풍도를 잇는 노두길이 보인다. 12사도 순례길의 두 번째인 안드레아 집의 하늘색 돔은 양파를 형상화한 것이고, 첨탑에 있는 고양이는 ‘고양이 천국’ 대기점도를 상징한다.

군과 주민들은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이어가던 중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모티브를 얻어 5개 섬을 순례자의 섬으로 칭하고 ‘12사도 순례길’을 조성했다. 삶에 지치고 위안이 필요한 사람들이 섬을 찾아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자는 취지다.

모섬인 병풍도를 제외한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을 잇는 12㎞ 순례길에 예수의 12제자를 상징하는 작은 예배당을 한국, 프랑스, 스페인에서 온 11명의 건축미술가들이 만들어냈다. 기점도와 소악도 주민들은 흔쾌히 자신의 토지를 내놓았다. 그 후 ‘섬티아고’로 부르기 시작했다.

야고보의 그리움의 집.

12 사도의 집은 기독교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종교가 없는 일반인에게는 스스로를 성찰하는 치유의 공간이다. 종교를 떠나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쉼터 역할을 한다.

가고 싶은 섬 기점·소악도 순례의 길은 대기점도 대기점 선착장의 파란 지붕 베드로의 집 옆에 있는 작은 종을 치면서 시작한다.

필립의 행복의 집.

첫번째 베드로의 집은 건강의 집으로 이름 지었다. 그리스 지중해연안 산토리니의 한 점을 옮겨 놓은 듯하다. 코발트블루 사파이어색 둥근 지붕 아래 흰 회벽으로 마감했다. 바다와 어울리는 산뜻한 색감이다. 예배당 내부는 특별한 장식이 없으며 간결하다. 삼지창 벽화가 있는 부속건물은 반전이다. 아름다운 공중화장실이다.

300m 길이의 방파제 끝에 순례객의 편의를 위해 전기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대여료는 반나절 5,000원, 하루 10,000원 이다.

바르톨로메오의 감사의 집.

베드로의 집에 이어 2번 안드레아의 집은 생각하는 집, 3번 야고보의 집은 그리움의 집, 4번 요한의 집은 생명평화의 집, 5번 필립의 집은 행복의 집, 6번 바르톨로메오의 집은 감사의 집, 7번 토마스의 집은 인연의 집, 8번 마태오의 집은 기쁨의 집, 9번 작은 야고보의 집은 소원의 집, 10번 유다 다대오의 집은 칭찬의 집, 11번 시몬의 집은 사랑의 집, 마지막 12번째 가롯 유다의 집은 지혜의 집이라 정했다.

가롯 유다의 집은 만조 때는 갈 수 없는 딴섬에 자리한 고딕양식 예배당이다. 몽쉘미셀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건축물로 뾰죽지붕과 붉은 벽돌, 둥근 첨탑이 매력적이다. 가는 길에 조릿대나무 숲길과 고운 모래사장도 있다.

마태오의 기쁨의 집.

“땡 땡 땡”… 벽돌을 나선형으로 돌려 쌓은 종탑의 종을 울리며 피날레를 장식한다. 일부러 물이 찰 때 들어가 아무도 없는 섬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자. 물이 빠지면 갯벌에서 고동줍기는 순례길의 보너스이다.

기점·소악도에 물이 들면 모든 순례자의 일상은 잠시 멈춘다. 노두길에는 자연에 따라 걷고 쉬기를 반복하는 특별함이 있다. 빠름과 편리함이 익숙한 우리들에게 섬은 자연스레 멈춤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유다 다대오의 칭찬의 집.

◇여행메모=압해도 송공선착장, 지도읍 송도선착장 등에서 차도선이 운항한다. 송공항에서 대기점도까지 70분가량, 송도선착장에서 병풍도 까지 25분 걸린다. 배 시간은 계절과 물때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와 민박 이용 숙식이 가능하다. 모든 일정은 여행자센터(061-246-1245)에 확인하는 게 좋다.

가롯유다의 지혜의 집.

신안=글·사진 곽경근 쿠키뉴스 대기자, 드론촬영=왕보현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