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민 심평원장 “나도 12년간 비정규직… 390명 정규직 전환”

입력 2020-07-25 04:06 수정 2020-07-26 13:04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선민 원장이 지난 8일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 원장은 심평원이 코로나19 사태 초기 의료기관 방문 환자들의 해외여행이력 정보를 제공하면서 존재감을 보여줬다는 평가에 대해 “이 일을 계기로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꼈다는 직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심평원 제공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사태를 보며 저의 비정규직 12년이 떠올랐습니다. 돈을 적게 받던 것도 아니었는데 재계약 시기가 다가오면 불안하더군요.”

4월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이끌고 있는 김선민 원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국공 정규직 전환 사태와 관련해 자신이 심평원 평가위원으로 있었던 시절을 언급했다. 2년 단위로 계약하는 평가위원은 시험을 통과해야 재계약할 수 있는데, 재계약 후 1년까진 행복하지만 그 1년이 지나면 불안해진다고 했다. 그는 “나 같은 사람도 고용이 보장되지 않으니 불안함을 느꼈다”며 “고용이 안정되지 않았을 때 애사심이 나올까, 내 몸 바쳐 일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심평원은 작년 말까지 기간제 근로자 119명과 파견용역근로자 271명 등 총 39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현재 콜센터 근무 직원의 직접 고용을 앞두고 있다. 심평원은 공공일자리 부문에서 보건복지부가 선정한 2017년 일자리 창출·지원 우수기관에 선정되기도 했다.

정규직 전환이 한창일 때 기획이사였던 김 원장은 자신이 일하던 층을 청소해주던 미화원 여성을 노사정전문가협의체에서 만난 일화를 꺼냈다. 평소 미화원 복장으로만 다니던 이 여성이 이날만큼은 곱게 옷을 차려입고 나와 김 원장의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고 연거푸 인사했다고 한다. 지난 8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 원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고용의 안정성이라는 게 한 영혼의 문제인 것처럼 느껴졌다”며 “쏟아지려는 눈물을 겨우 참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정규직 전환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기존 정규직과의 형평성 문제, 향후 10~20년 뒤 승진 문제, 그에 따른 보수 문제 등이 산적해 있다”면서도 “고용의 안정성이 한 개인에게 갖는 의미를 생각하며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했던 심평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존재감을 보여줬다. 의료기관을 방문한 환자들의 해외여행이력 정보를 제공한 게 심평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 마디가 도화선이 됐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만큼 우한 여행력이 있는 사람을 걸러내는 게 시급했고 그 방법을 찾던 중 심평원의 ITS-DUR 시스템(해외여행력 정보제공서비스/의약품안심정보서비스)을 보고받은 문 대통령이 “이런 좋은 시스템을 적극 활성화하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심평원은 요양기관의 ITS-DUR 시스템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일일이 전화를 돌려 가동률을 99%까지 높였다.

DUR의 본래 의사가 진료 환자의 투약이력을 조회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DUR이 환자의 해외여행력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까지 하게 된 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다. 환자가 중동에서 다녀왔는지 여부를 의료기관이 파악해야 했는데 환자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의료기관에 줄 수 있는 창구가 DUR이 유일했고 이 때문에 DUR로 해외여행력을 제공토록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한다.

출입국관리소 확인 내용과 통신사 로밍 등 각종 정보가 하루 4번 DUR에 반영된다. 현재는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 여행이력 정보를 제공하고 코로나19 확진자 여부, 밀접접촉자인지 자가격리자인지 여부까지 정보가 들어간다. 지난 6월 기준 239만건의 해외여행력 정보를 전국 요양기관에 제공했고 112만건의 역학조사 자료를 지원했다. 김 원장은 “직원들이 ‘가족조차 심평원이 뭐 하는 기관인지 몰랐는데 이제 알게 됐다’더라”며 직원들이 이 일을 계기로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심평원은 ‘코로나19 환자 이력 통합 관리 시스템’을 통해 치료부터 완치 후 재확진까지 종합적인 치료현황 조회와 통계 데이터도 제공한다. 음압격리병상 모니터링 시스템을 운영하며 97개의 감염병 전담병원의 입원 가능 병상 수, 의사와 간호사 등 담당 인력 현황, 에크모 등 장비 보유 현황도 공개한다. 의약품 정보 시스템으로는 코로나19 치료의약품 보유업체 및 재고 수량을 상시 모니터링 한다.

실시간 정보 공유를 통해 의심환자를 빠르게 분류함으로써 코로나19 전파를 차단하는 게 방역에선 긍정적이지만 과도한 개인정보유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김 원장은 이 부분에 대해 “개인정보 공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인권의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건 맞지만 전염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게 더 우선”이라며 “국가가 치료를 강제할 권리는 없지만 가까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전염병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에겐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도록 피해야 할 장소를 알 권리도 있다”며 “이런 이유로 심평원 직원 가족 중에 확진자가 나오면 그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심평원은 코로나19 대응뿐 아니라 환자와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도록 일원화한 소통 창구를 마련할 방침이다. 현재 병원급 이상 기관을 대상으로 예방접종료, 도수치료 등 564항목의 비급여 진료비를 공개하고 있는데 공개항목을 추가함으로써 국민이 각기 다른 비급여 진료비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내가 먹는 약! 한눈에’ 서비스를 통해 환자가 최근 1년간 자신이 먹은 약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요양기관은 환자의 의약품 복용정보를 사전에 확인함으로써 약물로 인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한다.

김 원장은 “국민의 건강할 권리와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지원하는 게 심평원의 임무”라며 “앞으로도 전 국민의 의료접근성을 지원해 의료서비스에서 국민이 차별받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