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벌레… 깔따구… 지구온난화가 키운 ‘혐오 곤충’의 습격

입력 2020-07-22 00:08

올해 여름 들어 도심 곳곳을 습격하고 있는 곤충들의 ‘대발생’에는 지구온난화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온난화로 이상고온 현상이 이어지면서 곤충들이 번식하기에 적합한 환경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수돗물 유충’ 깔따구 외에도 대벌레, 매미나방, 노래기 등 인체에 직·간접적으로 해를 입힐 수 있는 곤충들이 전국적으로 줄지어 출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병충해가 심각해질 것에 대비해 선제적인 방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한다.

백순영 가톨릭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는 21일 “곤충이 인간의 일상생활 영역까지 침범할 정도로 기승을 부리게 된 원인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반도에 서식하는 곤충지도가 기후변화로 인해 바뀌면서 곤충들의 천적도 줄어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구온난화로 역대급 이상고온을 보였던 지난겨울에 이어 다습한 여름철이 오면서 곤충들의 번식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겨울 전국 평균기온은 3.1도로 1973년 이후 가장 높았다. 최고기온(8.3도)과 최저기온(영하 1.4도) 둘 다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등 이례적으로 가장 따뜻했던 겨울로 기록됐다. 시베리아 지역의 고온현상이 한반도로 부는 찬 북서풍의 영향을 약화시킨 탓이다.

고온 현상과 곤충 번식 간 유의미한 관계는 통계로도 증명되고 있다. 농촌진흥청과 산림청이 지난해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공동으로 실시한 ‘농림지 동시발생 돌발해충 발생조사’에 따르면 돌발해충 발생면적은 2018년보다 26.3% 줄어들었다. 발생면적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꾸준히 늘어 3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지난해 일시적으로 평균기온이 1도가량 낮아지면서 발생면적이 줄어든 것이다.

박선재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연구관은 “몇 년을 주기로 곤충들의 ‘대발생’은 지속적으로 관측되고 있는데 겨울철 고온현상이 알을 까고 나온 유충의 생존력을 높이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심각한 것은 해충이 농경지뿐만 아니라 도심 속으로까지 파고들고 있다는 점이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기준으로 매미나방 발생면적은 6139㏊(약 61.39㎢)에 달했다. 여의도 면적(290㏊)의 약 21배에 해당한다. 인구가 밀집된 서울과 경기도는 각각 1656㏊, 1473㏊로 가장 높은 발생면적을 보였다.

매미나방은 국내에서 출몰하는 대표 해충이다. 유충의 털과 성충의 몸에서 나오는 인편(비늘 가루)은 모두 강한 독성을 지니고 있어 인체에 접촉하면 두드러기나 피부염을 일으킨다. 대벌레 역시 해충과는 아니지만 시민들에게 극도의 혐오감과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최근 서울 은평구의 한 야산에서 나뭇잎을 좀먹는 대벌레가 무리로 발견된 데 이어 국내 대표 관광지인 제주도에서도 세력을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지구온난화로 병충해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백 교수는 “당장 문제가 되는 깔따구 사건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충 재난의 ‘전조현상’일 수도 있다”며 “기후변화는 단순히 곤충뿐만 아니라 코로나19처럼 새로운 바이러스 등장과도 연관이 깊은 만큼 정부도 방제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