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현실이 됐다. 국내 철강업계에 불어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한파의 실체가 2분기 실적에서 드러났다. 국내 철강 1위 기업인 포스코가 상장 이후 32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발표하며 신호탄을 쐈다. 다음 주 2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현대제철은 이미 지난해부터 공급과잉 등 문제로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하반기 전망도 밝지 않다. 당초 2분기에 바닥을 친 후 브이(V)자 모양으로 반등한다는 전망이 대다수였지만 최근 ‘일본산 저가 철강재’라는 변수가 생겼다. 전방산업 경기 회복은 더딘데 원료인 철광석 가격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트리플 악재’다. 철강업계는 자동차, 건설, 조선 등 국내 주력 산업의 후방산업이다. 철강업계가 위축되면 코로나19 타격을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국내 제조업 경기가 주저앉을 위험이 크다.
포스코는 지난 2분기 1085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고 최근 발표했다(별도 기준). 매출은 5조8848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21.3% 감소했다. 포스코가 분기 적자를 낸 건 1988년 상장하고 2000년에 분기 실적을 공시한 이후 처음이다. 금융투자업계는 현대제철도 216억원의 영업적자를 내 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한다.
조선, 자동차 등 전방산업의 코로나19 타격이 2분기부터 본격화하면서 국내 철강업계 ‘빅2’의 실적을 끌어내렸다. 24일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소비된 철강재량은 4월과 5월 각각 665만t, 625만t으로 지난해보다 9.5%, 14.8% 떨어졌다.
가장 타격이 심한 분야는 조선업으로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량은 지난해보다 68% 이상 감소했다. 포스코, 현대제철은 아직도 조선사들과 상반기 철강 가격 협상을 끝내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두 업종 모두 죽어가는 상황에서 누가 먼저 죽을지를 결정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철강재 수입국인 중국의 ‘밀어내기 수출’도 실적 악화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저가 수입량 확대는 철강재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국내 철강업계에 악재다. 중국은 경기부양책, 코로나19 완화 등 영향으로 2분기 들어 철강 생산량을 늘렸다. 지난 5월 중국의 철강 생산량은 9227만t으로 지난해보다 3.6% 늘어 월 기준 역대 최대 기록을 세웠다. 공급과잉에 따라 철강 재고가 쌓였고 저가 철강재는 대량으로 국내에 밀려 들어왔다. 지난 2월 51만t이던 국내 중국산 철강재 수입량은 3월 93만t, 4월 85만t으로 급증했다.
감염병과 중국산 저가 철강재 공습을 받은 철강업계는 철광석 가격까지 오르자 그야말로 ‘녹다운’됐다. 철강재 가격을 올려 팔 수 없는 상황인데 원자재 가격이 올 들어 30% 이상 뛴 것이다. 올 초 t당 82.44달러였던 철광석 가격은 지난 6월 100달러를 넘어선 뒤 지난 17일 111.7달러를 기록했다.
문제는 하반기 전망도 어둡다는 데 있다. 당초 코로나19 완화와 중국 내수 수요 회복 등으로 3분기부터 국내 철강업계 실적이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실제 5월부터 중국 내 철강 유통 가격이 반등하면서 국내 수입량도 줄고 있다. 지난달 중국산 철강재 수입량은 전월보다 15% 떨어진 55만t이다.
변수는 ‘품질이 좋으면서도 싼’ 일본산 철강재의 습격이다. 올해 열릴 예정이었던 도쿄올림픽이 연기되자 경기장이나 인프라 공사에 대비해둔 철강제품이 대량으로 국내에 넘어오고 있는 것이다. 통상 일본산 철강재 수입량은 중국산보다 적었는데, 올 상반기 일본산이 중국산 물량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상반기 일본산과 중국산 수입량은 각각 431만t, 421만t이다.
하지만 중량이 아닌 수입금액으로 따지면 중국산 수입액이 37억 달러로 일본산 수입 규모(25억 달러)보다 많다. 일본산이 중국산보다 더 싸게 수입됐다는 의미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일본산 형강 가격은 한국산보다 5만~6만원 낮게 책정돼 일부 대형 조선사들은 일본산 가격에 맞춰 수주를 요구하는 등 곤란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방산업인 제조업의 3분기 전망도 좋지 않다. 지난 12일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제조업 경기실사지수의 3분기 전망 지표를 보면 매출액·수출·경상이익 항목지수가 83~85로 2분기 전망지수보다 3~4포인트씩 하락했다. 경기실사지수는 100 이상일수록 업황 개선을, 0에 근접할수록 악화를 의미한다.
철강업황 개선 시점이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무역협회가 국내 수출기업 956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철강산업은 3분기에도 수출이 부진할 거란 전망이 나왔다.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EBSI)가 110을 넘어야 수출 호조세로 볼 수 있는데, 철강 및 비철금속은 72.5에 그쳤다. 국내 평균인 102.1보다 한참 낮은 수준이다.
재료산업인적자원개발위원회(ISC)도 최근 발간한 ‘코로나19가 철강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하반기에 코로나19로 가동을 중단하거나 감산에 들어갔던 설비들을 일제히 재가동하기 시작하면 중국, 동남아 등으로 수출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며 “자국 시장 보호와 수입 규제 움직임도 강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항만, 철도와 같은 한국판 뉴딜 정책 대형 인프라 사업이나 민관 협력 SOC 사업 등을 통해 내수시장 복원 노력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