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 ‘의미 있는 공간’의 조화… 지역에 활기를 불어 넣다

입력 2020-07-23 00:07
예일디자인그룹이 건축한 서울 도림교회의 3000석 대예배당. 강단 천정에서 퍼져나가는 원형 조명이 성도들을 설교자로 집중시킨다. 예일디자인그룹 제공

지루한 장맛비가 소강상태에 이를 즈음 당시 인테리어공사를 맡은 교회의 목사님이 잠시 만나자고 전화했다. 아래층엔 어린이집과 조그만 예배공간과 부속실이 있는 교회였다. 교회는 증축 공사가 한창이었고 재정이 부족해 고민 중이었다. 목사님은 늦어서 미안하다며 계약금과 공사비를 건넸다. 나는 “이 돈은 어디서 나셨어요”라고 물었다.

목사님은 한참 말을 못하시다가 입을 열었다. 그 교회 집사님이 우즈베키스탄 내 자치공화국인 카라칼팍스탄 공화국에 선교사로 가기 전 헌금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선교지에 정착하려면 돈이 필요할 텐데 헌금을 많이 했다고 했다. 목사님은 이 돈은 그 집 딸아이 사망 보상금이라고 말했다. 선교지로 떠나기 한 달 전 이 가정의 4세 딸 아이가 빌라 앞 공터에서 놀다가 차에 치여 숨졌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춰 버린 것 같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그저 목사님이 내민 봉투를 다시 건넸다. 도저히 이 돈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며칠 후 이 교회 건축을 맡은 업자가 잠적해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업자는 교회건축비의 절반을 3년에 걸쳐 받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신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업자는 교회가 준 초기 건축비가 소진되자 건축을 하다말고 없어진 것이다. 목사님은 나를 불러 “예일디자인밖에 대안이 없다”며 공사 마무리를 눈물로 호소했다.

이선자 대표 (예일디자인그룹·국민일보 교회건축 자문위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 교회 완공이 사명처럼 생각됐다. 그런 과정에서 공사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묻지도 못했다. 그냥 ‘예일디자인밖에 대안이 없다’는 말에 계약도 하지 않고 공사를 시작해 마무리했다. 아름다운 이야기이지만 그 결과 회사는 3년간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예일디자인그룹의 초창기는 그랬다. 이 교회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은 것이고 나는 비로소 비즈니스와 관련한 분별의 눈을 갖게 됐다.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교회 건축을 마냥 신앙심만 갖고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다. 즉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문성과 관련해 특히 CM(건설사업관리)을 논하고 싶다. 많은 교회가 요즘 CM이 만능 해결사인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전문적인 자격도 없이 CM을 하는 곳이 허다하다. 그저 신앙심을 강조하고 인맥을 통해 수주만 하면 된다는 식이 솔직히 많다.

실제 포르쉐 자동차를 설치한 유년부실. 예일디자인그룹 제공

전문성과 관련해 또 하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의미 있는 공간 창출’의 가치에 눈을 떠야 한다는 점이다. 교회건축을 하면서 비용 절감을 위해 경쟁만 부추기다 보면 공간에 대한 가치를 무시하기 쉽다.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건축물로 평가받는 서울 도림교회 예를 들고 싶다. 예일디자인그룹이 건축했다.

교회는 수년째 지역장애아들을 돌보는 역할을 하며 지역사회에 ‘영적 새바람’을 일으킨 교회다. 로비 입구에 십자가 전시실은 본질에 충실한 묵상의 장소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존재의 차원임을 일깨우는 곳이다. 또 목회자의 목회 철학이 잘 반영된 곳이기도 하다.

1층 카페 공간. 예일디자인그룹 제공

교회 로비에 들어서면 커피향이 풍긴다. 교회에는 소통과 교제의 장소로서 소모임 공간이 많이 갖춰져 있다. 동반한 자녀를 위한 키즈플레이존(Kids play zone)도 마련돼 있다. 로비의 미니멀한 디자인의 무메지 석재 타일과 높은 천장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의 느낌이다. 주민을 위한 도서실과 지역청소년들을 위한 독서실은 ‘함께’라는 메시지를 준다. ‘아름다운 가게’, 신협, 스포츠센터, 암벽타기가 이 교회 공간의 흥미를 끈다.

그러면서 1층 소예배실은 십자가의 간접 빛이 숙연한 영적 감동을 준다. 콘서트실 전면의 오색 컬러패턴과 벽면의 건축 음향적 공학 설계는 품격 높은 공연을 약속한다.

또 3000석의 본당 대예배실의 문을 열면 그 공간에 압도된다. 공간 디자인과 은유한 빛은 성도들의 신앙심을 고취하기에 충분하다. 전면의 대형십자가는 도림교회의 ‘오직 주님’이란 입구 슬로건과 함께 교인들의 신앙 의지를 보여준다. 천장 흡음재도 특별하다. 원형타공은 밤하늘의 별이 빛나는 것처럼 보이며 충만함을 선사한다.

개인기도실은 묵상과 감성의 공간이고 500여석의 대형식당은 몇 개의 칸으로 구별돼 다용도로 쓸 수 있게 돼 있다. 전체적으로 디테일과 조명 컬러의 조화, 미니멀한 픽토그램 사인의 조화까지 교회 공간의 질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자부한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목회자와 성도들의 헌신과 건축에 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별히 건축에 관한 관심은 공간의 이해를 낳고 후에 그 결과를 누리는데 이른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공간이자 성도들이 교제하는 공간으로서의 교회인 것이다. 그런 교회의 탄생은 곧 지역 사회에 영적인 새 바람을 일으키게 된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