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산다] 성게알

입력 2020-07-25 04:05

나는 제주도에 이주하기 전부터 제주도에 자주 온 편이다. 한동안 제주공항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성게알미역국부터 먹었다. 달달하고 고소하고 바다 향 그윽한 그 국을 한 그릇 먹어야 비로소 내가 제주에 왔구나 하고 실감했다. 제주도 부드러운 미역 사이로 성게알이 노랗게 익어 풀어진 그 국은 제주도 대표음식의 하나다.

올해 내가 사는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해녀들의 성게 잡이는 5월 20일 시작해 6월 말 마쳤다. 40일 정도 되지만 물살이 센 사리와 파도가 높아 바다가 세다고 하는 날을 빼면 30일 정도 작업한 셈이다. 성게는 3~10m 깊이 바다의 돌 틈에 서식한다. 물속에 들어가 줍는 것이 아니라 돌 틈을 뒤지거나 돌을 뒤집어야 한다. 큰 돌 밑에 더 크고 많은 성게가 있다. 많이 잡기 위해 큰 돌을 뒤집어야 하고 그러면 숨도 가쁘고 힘도 더 든다. 한 번 들어가면 네댓 시간 이 작업을 한다.

이때쯤 바닷가 해녀막사 부근에는 갓 잡아온 성게를 수북이 쌓아놓고 해녀와 해녀의 남자, 그리고 가족들이 달려들어 서둘러 성게 까는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성게는 뭍에 올라온 순간부터 상하기 때문에 시간을 다툰다. 성게의 결을 따라 반으로 쪼개면 속에 노란 생선 알같이 생긴 살 네 덩이가 나온다. 이것을 티스푼으로 부서지지 않게 조심스레 떠내고 사이마다 붙어 있는 실 같은 내장을 발라낸다. 이물질을 떼어내느라 잘못 만지면 살이 뭉개진다. 물속에서 성게를 잡아오고 다듬기까지 힘들고 까다롭고 지루한 작업이다. 그래서 비싸다.

올해 하도리 지역 성게알 중간 수집상의 수매가는 1㎏에 7만2000원이었다. 해녀 상군이 150㎏, 중군이 100㎏ 정도 했다고 한다. 지인들이 마을 해녀들에게 직접 살 때는 9만원 내외다. 한 차례 더 가공하는 수집상과 달리 지인들에게 파는 것은 이물질을 잘 발라낸 상품(上品)이기 때문이다.

잘 아는 식당 주인이 식자재 납품업자에게 “성게알에 물이 반이야. 우리는 뭐 남으라고”라며 전화로 호통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전화를 끊더니 “다른 걸로 바꿔준대”라고 했다. 유통되는 성게알 품질에 차이가 이렇게 많다. 구좌하나로마트에는 300g 단위 냉동비닐 포장에 3만8000원 가격표가 붙어 있다. 이날 현재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제주산 성게알 700g을 10만4000원에 팔고 있다. 이보다 더 비싸게 낸 것도 많다.

성게알은 사실 알이 아니다. 그 노란 덩어리는 성게가 번식을 위해 난자와 정자를 만들 영양을 모아놓은 주머니, 즉 생식소(生殖巢)다. 이 영양 덩어리로 암컷은 난자를, 수컷은 정자를 만들어 수정한다. 그래서 암수 다른 몸이지만 암컷뿐 아니라 수컷에도 성게알이라는 노란 생식소가 있다. 성게알이 아니라 성게소라 불러야 맞는 표현이겠지만 언어라는 게 어디 그리 쉬운가.

성게알은 알이 풀어지기 전에 간장에 살짝 찍어 날로 먹을 때 달콤 쌉싸름한 그 맛을 잘 알 수 있다. 미역국, 파스타, 비빔밥, 어떤 요리에 넣어도 다 맛있다. 독거 체험할 때 이웃이 끓여준 성게달래된장국으로 네 끼를 내리 먹은 적이 있다.

박두호 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