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짧고도 슬픈 스물두 해
② “우리는 모두 최숙현이었다”
③ 장윤정 왕국의 작동방식
‘하나님, 부디 저를 높게 보고 더 높이 날게 해주세요.’
지난 15일 경북 칠곡에서 만난 전 육상 선수 추모(22)씨 왼 팔을 뒤덮은 타투 중 가장 큰 사이즈의 십자가 문양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십자가 위엔 가족사진 문양이, 그 뒤편엔 ‘올바른 길을 가게 해달라’는 의미의 나침반 문양이 있었다. “타투하는 느낌이 자해하는 것과 비슷해 자해보단 타투를 하게 됐어요. 자해 흔적을 가리고 싶기도 했구요.” 추씨는 운동 선수 생활을 하며 당한 폭행·폭언의 굴레 속에서 ‘죽을 만큼 힘들어’ 자해를 하게 됐다고 한다.
트라이애슬론 선수 고(故) 최숙현(22)이 극단적 선택까지 하게 된 건 최숙현이 정신적으로 나약했다거나 특별한 성격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최숙현과 운동을 함께 했던 주변 선수들도 폭행·폭언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학원 스포츠 현장에서 어린 시절부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이들 앞엔 맞으면서 재미없어진 운동을 계속 하거나, 좋아하던 운동을 포기하거나 하는 두 가지 선택지만 주어졌다. 그런 사례는 종목을 가리지 않았다.
최숙현이 마지막까지 의지했던(본보 3일자 24면 ‘“나 좀 살려줘” 매일 울며 절규...눈 감고 귀 막은 그들’ 참고) 전 남자친구 추씨는 중학교 시절 각광 받는 선수였다. 초등학교 땐 부모님 반대가 심해 잠시 그만뒀어야 했지만, 2011년 중학교 진학 후 칠곡종합운동장에서 훈련 받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지역 코치를 직접 찾아가 “다시 운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로 육상에 대한 그의 열정은 컸다. 훈련에 매진한 그의 성적은 꾸준히 좋아졌다. 이듬해 주종목 멀리뛰기가 아닌 부종목 110m 허들에서 KBS 전국대회 2위를 차지했고, 경북에선 1등도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한다는 건 곧 폭언·폭행의 굴레에 합류했다는 걸 의미했다. 좋은 성적을 거두자 다음 대회에선 기록을 앞당겨야 했다. 기대치를 달성하지 못할 때 코치들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욕설을 퍼부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훈련장에서 구토까지 한 추씨에겐 각목이나 야구 배트가 날아들었다.
학교에서도 추씨는 편할 수 없었다. 오전 수업만 마치면 훈련장에 가야했다. 대회가 끝나고 돌아오면 추씨의 책걸상은 없어졌고, “내 자리 어디갔냐”고 묻는 추씨에게 친구들은 “대청소 했는데 안 들고 왔다”고 말했다. 민감했던 청소년 시절. 훈련장에선 폭언·폭행의 피해자로, 학교에선 ‘이방인’으로 취급된 추씨는 결국 그런 스트레스를 자해로 풀게 됐다.
경북체고에 진학할 유망주들이 모두 모였던 2013년 예천 전지훈련에서 추씨는 결국 훈련장 이탈까지 했다. 일면식도 없었던 체고 코치들이 매일 가혹행위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체고 생활은 더 가혹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4회의 훈련 강행군이 이어졌고, 폭언·폭행의 강도도 더 심해졌다. 이 과정에서 육상 팀에서만 추씨 포함 5명이 육상 선수의 길을 포기했다고 한다. “나올 땐 ‘다른 학교에선 운동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운동 포기각서’까지 써야 했어요.”
일반고로 전학 간 뒤에도 ‘운동선수’의 낙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운동만 했던 추씨는 아예 손 놓았던 공부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자퇴한 뒤 검정고시를 봐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폭력의 기억, 꿈을 이루지 못했단 자책이 트라우마로 남은 추씨는 지금도 자해 충동이 든다고 했다. 추씨가 타투를 늘려가는 이유다. “사춘기 시절 방황할 때 누군가 옆에서 다독여주고 잡아줬다면, 좋아했던 육상을 계속 하지 않았을까요.”
최숙현과 수영·트라이애슬론을 함께 했던 후배 임모(21)씨도 수영 선수 생활을 시작한 뒤 추씨와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기록이 안 나오면 오리발·야구 배트로 허벅지에 피멍이 들 때까지 맞았고, 훈련과 폭력이 서로 구분되지 않는 훈련장은 그에게 ‘공포’였다. 모두가 맞았기 때문에 문제의식을 가지기도 힘들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맞았지만 그 땐 그게 잘못된 줄도 몰랐어요. 전문적으로 수영을 배우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참았죠.”
임씨는 결국 체고 3학년 때 부상을 핑계로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매일 맞으면서 운동하는 것도, 강압적인 문화에도 넌더리가 났어요. 수영이 싫어졌죠.” 임씨는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나서야,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찾았던 수영장에서 ‘좋아하게’ 됐던 수영을 온전히 다시 즐길 수 있게 됐다. 임씨는 “요샌 임용시험 준비하는 선배들에게 수영을 가르치기도 한다”며 “아무 걱정 없이 수영하고 가르치니 다시 수영이 재밌어졌다”고 했다.
수영과 트라이애슬론, 근대5종을 하다 김규봉 감독 등의 가혹행위를 겪었던 경북체고 후배 채모(21)씨도 고등학교 3학년 때 모두 그만 뒀다. 그는 “갑자기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압박감에 주변 사람들과 연락도 끊고 많이 울었다”고 떠올렸다.
경주시청에서 최숙현과 가혹행위를 함께 겪어낸 동료선수 A씨는 경주시청 시절 목표가 ‘메달’이 아닌 ‘탈출’이었다고 증언한다. 입단 후 시작된 폭력에 어떻게든 1년만 버티고 팀을 나오자는 생각만 했다는 그는 은퇴도 생각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면, 그런 체육계에선 더 운동을 할 수 없죠.”
최숙현의 죽음 이후 추씨, 임씨, 채씨, A씨는 집에 틀어박혀 우울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며 술로 괴로움을 떨쳐버리고 싶지만 이마저 쉽지 않단다. 이들은 ‘성적 향상을 이유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관행’이 근절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숙현 사건 가해자의 처벌 여부 및 체육계 개혁은 현재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체념 섞인 반응도 보였다. “폭언만 해도 중징계한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폭언과 폭행을 하며 가르쳤던 사람들이 변할까요. 일시적인 효과는 있더라도 완전히 변하는 건 힘들 거라고 봐요.(추씨).”
12일 경북 성주의 납골당을 찾은 추씨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선수 시절 고통을 함께 나눴던 최숙현은 한 줌 재로 돌아가 작은 정사각형 안치단 안에서 옅은 미소만 짓고 있었다. 경직된 추씨의 얼굴을 타고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릴 때, 밖엔 비가 쏟아졌다.
“숙현이가 아팠던 게 다 이해가 되니까…영정사진 보고 어떤 이야기도 못 하겠더라구요.”
[최숙현이 떠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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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경산·성주·구미=이동환 정우진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