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석창우 (8) 밤낮으로 서예 연습… 붓과 의수가 점점 내 몸처럼

입력 2020-07-22 00:07
석창우 화백이 1991년 전라북도서예대전에서 입선한 붓글씨 작품이다. 8~9세기 무렵 중국 당나라 때 한산자(寒山子)라는 은둔의 인물이 천태산의 나무와 바위에 써놓은 시구 일부를 담았다.

3개월이 지나자 손으로 먹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졌다. 허리도 아프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화실이 아닌 여태명 교수께서 날 받아 준 것은 서예를 통해 필력을 키우라는 하나님의 프로그램이었다.

여 교수로부터 본격적으로 서예를 배우며 문자추상과 사군자도 배우기 시작했다. 작가로서 새롭게 주어진 삶을 앞두고 호(號)도 생겼다. 금곡(金曲)이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여 교수가 서예를 갓 시작한 내게 지어준 호다. 사자성어 금란지교(金蘭之交)에서 ‘금’자를 곡굉지락(曲肱之樂)에서 ‘곡’자를 땄다. 금란지교는 쇠처럼 굳고 난처럼 향기가 배어 나오는 사귐을 뜻한다. 곡굉지락은 팔을 베개 삼아 잠을 자는 속에 있는 즐거움이라는 뜻이다. 여 교수는 자신과 친구처럼 교류하며 세속에 욕심부리지 말고 작품 생활을 즐기며 살자는 뜻을 담았다고 했다. 이런 생각은 앞서 설명했던, 나의 또 다른 호인 유빙(流氷)과도 맞닿아있다.


호도 만들었으니 본격적으로 화가의 삶이 시작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일반인 수준에 도달하려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처음엔 목표를 5년으로 잡았다. 5년 정도면 일반인과 비슷하게 서예를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지 않겠나 싶었다. 하지만 막상 일반 회화보다 쉬울 것으로 생각해 겁 없이 시작한 서예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서예는 덧칠이 안 되고 한 번 한 획으로 해야 한다. 쉽지 않았다. 점차 연습량을 늘려갔다. 밤낮으로 매달려가며 연습에 몰두했다. 서예와 그림을 배우는 처음 10여년간은 하루에 열 시간 이상 그림을 그렸다. 점점 붓과 의수가 내 몸처럼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여 교수 밑에서 서예를 배우기 시작한 지 햇수로 3년째 되던 1991년이었다. 전라북도서예대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 교수는 열린 사고로 내게 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뭐든지 해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여 교수께 알리고 작품을 출품하면 괜히 남몰래 도와주시거나 그의 입김이 들어가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을까 싶었다. 여 교수 몰래 공모전에 출품했다. 한문을 적은 서예 붓글씨였다. 며칠 뒤 입상작 발표가 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던 내게도 입상 소식이 전해졌다. 꿈만 같았다. 희망이 생겼다. 팔이 없어도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이 생겼다는 생각에 기뻤다. 지금 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함께하셨기에 길을 열어 주신 것이 아닌가 싶다.

그해 전라북도서예대전 입선을 시작으로 이듬해인 1992년부터 대한민국서예대전에 4회 입선을 했고 대한민국현대서예대전에서도 입상을 했다. 1996년까지 대한민국현대서예대전 특선과 우수상 등을 이어갔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였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