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포괄적 차별금지법 꼭 필요한가

입력 2020-07-21 00:18

‘모든 이를 위한 평등의 실현’이라는 기치를 내세운 정의당의 차별금지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법사위원회에서 관련 기관의 검토의견을 구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별도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 제정을 국회에 촉구했다. 정의당 안은 법 위반자에 대한 시정조치와 이행강제금 부과 권한을 인권위에 직접 부여한다는 점에서 과거 노회찬 의원 안과 같은 강력한 내용이다.

정의당의 법안 제안 이유를 보면, 헌법의 평등권 보장 규정에도 불구하고 많은 영역에서 차별이 여전히 발생하고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실정이므로 실효적인 차별구제수단들을 도입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신속하고 실질적인 구제를 도모하고자 하는 데 있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차별이 심하고 차별에 대한 구제수단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인권후진국처럼 보인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또는 ‘평등법’을 제정해야 이러한 오명을 벗을 수 있는 것처럼 들린다. 과연 그런가.

현재도 우리는 수많은 차별금지법을 갖고 있다. 양성평등기본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외국인처우법, 국가인권위원회법 등 많은 법이 있고 그것도 모자라 지방자치단체별로 어린이·청소년 인권조례, 학생인권조례 등이 있다. 현행 개별적 차별금지법은 차별사유의 심각성에 따라 그 제재의 정도나 수위가 다르다. 가령 남녀차별이나 장애인차별에 대해서는 징역형과 벌금을 부과하지만, 외국인 차별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외국인은 차별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국제법상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내국인과 동일한 차원에서 평등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의당의 차별금지법안은 이러한 차별의 다양성을 부인하고 모든 차별에 획일적 제재를 부과하려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국민 대다수가 거부감을 갖는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젠더정체성)에 대해서도 양성차별, 장애인차별과 같은 정도의 강력한 제재를 하겠다는 숨은 의도를 깔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차별금지법안은 그 적용대상을 고용, 상업과 서비스업, 교육 등 국민의 생활영역 거의 전부를 대상으로 하는 법이다. 이 법은 ‘차별’이라는 지극히 모호하고 주관적인 잣대로 위반시 민사배상과 형사처벌의 위협을 줌으로써 국민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경제활동의 자유를 위축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매우 주관적 기준인 ‘구별’이나 ‘괴롭힘’도 차별에 포함하는 데 심각성이 있다.

가령 의과대학 교수가 강의실에서 국가가 치료비 전액을 부담하는 에이즈 확산의 주된 통로가 남성 동성애자라는 통계자료를 제시하면 차별이 된다. 수강생이 수치심을 느낀다는 이유로 진정을 하는 경우 교수가 차별이 아님을 입증하지 못하면 차별금지법 위반으로 거액의 징벌배상이나 형사 제재를 받게 된다. ‘묻지 마 진정이나 제소’가 남발될 가능성이 크고 국민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거나 상업활동을 할 때 주저하게 될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종교단체도 적용대상으로 하고 법 위반시 그 대표자(주지스님, 주임신부, 담임목사)를 처벌한다. 양벌규정에 의해 종교단체에도 벌금이 부과된다. 특히 종교단체가 설립한 사립학교에서 특정 종교행사를 하거나 종교교육을 하면 다른 종교에 대한 차별이 돼 종교교육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기본적 의무이며 국민 대부분이 감당하는 병역을 종교적 이유로 거부하는 극소수자의 양심도 보호한다. 그런데 일반 국민이 아직 수긍하지 못하는 동성애를 비판한다는 것만으로 민형사 제재를 부과하려는 차별금지법안은 설득력이 없고 균형에 맞지 않는다. 소수자 인권보호라는 미명하에 국민의 입을 막고 갈등사회를 부추길 위험이 너무 크다.

한국사회에서 적절하고 균형 있는 평등원칙을 구현하는 것은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현행 개별적 차별금지법으로 충분하다. 보완할 점이 있으면 현행 차별금지법을 합리적으로 개정하면 된다. 이를 통째로 묶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은 ‘과유불급의 우’를 범하는 것이다.

서헌제 명예교수(중앙대·교회법학회장)